안동 영양남씨 남흥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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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영양남씨 남흥재사
Namheungjaesa Ritual House of the Yeongyang Nam Clan, Andong
안동 영양남씨 남흥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안동 영양남씨 남흥재사
영문명칭 Namheungjaesa Ritual House of the Yeongyang Nam Clan, Andong
한자 安東 英陽南氏 南興齋舍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남흥길 100
지정번호 국가민속문화재 제299호
지정일 2020년 12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소유자 영양남씨안동파남흥문중
시대 조선
수량/면적 건축물 1동 247.7㎡, 토지 1,303.9㎡(2필지)
웹사이트 안동 영양남씨 남흥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2018

이 건물은 고려 말 전리판서를 지낸 남휘주(南暉珠)와 공조참판 남민생(南敏生)의 묘를 지키고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건립연대는 1500년대로 추정되는데, 남흥사(南興寺) 법당 건물을 개조한 것으로, 이 곳의 지명을 따라 남흥재사로 이름붙였다고 한다.

이 재사는 정면 5칸, 측면 5칸의 ‘口’자형 건물로 오른쪽 대청을 누각식으로 꾸몄다. 이 누각 부분에는 고식의 문얼굴과 설주가 있는 등 조선 전기의 건축 수법이 남아 있다.

재사의 입구는 남쪽으로 향하고 있고, 대문간에 들어서면 왼쪽에 외양간이 있다. 외양간 옆에 고방과 부엌, 안방이 있다.

2020

재사(齋舍)는 학문과 덕행, 충효가 뛰어난 인물이나 입향조, 중시조 등을 추모하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묘소나 사묘(祠廟) 옆에 지은 집을 말한다.

남흥재사는 고려 말 때 문신이었던 남휘주(南暉珠, 1326~1372)와 아들 남민생(南敏生, 1348~1407)의 묘를 지키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웠다. 남휘주는 1354년 과거에 급제하고 1356년 친원파 기철, 권겸 등의 역모를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아들 남민생은 고려 말 음서*로 무관이 되었으나 조선이 건국되자 절의를 지키기 위해 고향에 은둔하였다.

남흥재사는 1500년대에 지어졌다고 추정한다. 원래 이곳에는 남흥사(南興寺)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남흥사의 법당을 개조해 재사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의 건물은 1998년에 모두 손보고 고쳤다.

앞면 5칸, 옆면 5칸 크기의 건물로서, 오른쪽에 있는 대청을 누각식으로 꾸민 것이 특징이다.


  • 음서(蔭敍):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공을 세웠거나 높은 벼슬을 한 양반의 자손을 과거시험 없이 관리로 채용하는 제도.

2021 문중 수정본

남흥재사는 고려 말 문신 남휘주(南暉珠 1326~1372)와 아들 남민생(南敏生 1348~1407)의 묘를 지키고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세워졌다. 재사(齋舍)는 학문과 덕행, 충효가 뛰어난 인물이나 마을을 창건한 자, 가문을 크게 번창한 자 등을 추모하는 제사(祭祀)를 지내기 위하여 묘소나 사묘(祠廟) 옆에 지은 집을 말한다.

고려 말 문신 남휘주는 1354년 과거에 급제하여 1356년 친원파(親元派)의 역모를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아들 남민생은 무과에 급제하여 무관이 되었으나 조선이 건국되자 절의를 지키기 위해 고향에 은둔하였다가 왜구 토벌을 위해 다시 관직에 나아가 공을 세웠다.

남흥재사는 1500년 전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방 5칸, 누 8칸, 좌우의 익랑 10여 칸 크기의 건물로서 오른쪽에 있는 원모루(遠慕樓)는 대청을 누각식으로 꾸며 방과 누가 하나의 형태로 구성된 것이 조화롭다. 독창적인 건물 양식과 500여 년을 이어 온 제례의식이 잘 보존되어 있어 2020년 12월에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 건물은 1998년과 2019년에 보수작업을 거쳤다.

  • 『와룡면지』, 『영가지』, 『안동향교지』, 『영양남씨 계유보』 등에 따르면, 남민생이 무과에 급제하고 호조참의를 역임했다는 기록이 있음.

영문

Namheungjaesa Ritual House of the Yeongyang Nam Clan, Andong

2018

This is a ritual house for the preparation of ceremonial rituals for Nam Hwi-ju (1326-1372), a civil official of the late Goryeo period, and his son Nam Min-saeng (1348-1407). It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in the 16th century by renovating a hall of Namheungsa Temple.

The wooden-floored hall on the right side of this house was built like a pavilion, and its architectural style, including the ornamental design of its windows, shows the features of the early Joseon period. The complex of this ritual house also includes a stable, a warehouse, and a kitchen.

2020

This is a ritual house for the preparation of ceremonial rituals and maintenance of the tomb of Nam Hwi-ju (1326-1372), a civil official of the late period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and his son Nam Min-saeng (1348-1407).

Nam Hwi-ju passed state examination in 1354. In 1356, he helped suppress a plot of treason. Because of this contribution, his son Nam Min-saeng was made a military official without having to sit for the state examination. When the Joseon dynasty (1392-1910) was established, Nam Min-saeng remained loyal to the Goryeo dynasty, retiring from office and returning to his hometown.

This ritual house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in the first decade of the 16th century by renovating a Buddhist worship hall of the former Namheungsa Temple, which once stood on this site. In 1998, the ritual house underwent a complete renovation.

2021

This is a ritual house for the preparation of ceremonial rituals and maintenance of the tombs of the civil official Nam Hwi-ju (1326-1372) and the military official Nam Min-saeng (1348-1407), a father and son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Nam Hwi-ju passed state examination in 1354 and helped to suppress a plot of treason in 1356.

Nam Min-saeng remained loyal to the Goryeo dynasty when the Joseon dynasty (1392-1910) was newly established, retiring from office and returning to his hometown. He later resumed his official service and made distinguished contributions in defense against Japanese pirates.

This ritual house is presumed to have been established at the turn of the 16th century. The building underwent renovations in 1998 and 2019.

영문 해설내용

2020

이곳은 고려시대의 문신 남휘주(1326-1372)와 아들 남민생(1348-1407)의 묘를 지키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운 재사이다.

남휘주는 1354년 과거에 급제하고 1356년 역모를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남휘주의 공을 인정하여, 아들 남민생은 과거시험을 거치지 않고 무관이 되었다. 이후 조선이 건국되자 남민생은 절의를 지키기 위해 고향에 은거하였다.

남흥재사는 150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이곳에는 남흥사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남흥사의 법당을 개조해 재사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의 건물은 1998년에 전면 보수하였다.

2021

이곳은 고려시대의 문신 남휘주(1326-1372)와 그의 아들인 무신 남민생(1348-1407)의 묘를 지키고 제사를 지내는 재사이다.

남휘주는 1354년 과거에 급제하고 1356년 역모를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남민생은 조선이 건국되자 절의를 지키기 위해 사직하고 고향에 은거하였다. 그러나 후에 다시 관직에 나아갔고 왜구 토벌에 공을 세웠다.

남흥재사는 150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1998년과 2019년에 전면 보수하였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