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일학교
기본 정보
| 이름 | 숭일학교 |
|---|---|
| 한자명 | 崇一學校 |
| 위도(latitude) | 35.2179968 |
| 경도(longitude) | 126.8968229 |
| 설립/폐지시기 | 1908년 |
| 소재지 |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북구 모룡대길 40 |
정의 및 개요
- 숭일학교(崇一學校)는 현 숭일중·고등학교의 전신으로, 미국인 선교사 배유지(Eugene Bell·1868~1925)가 그의 사택에서 선교부 직원 자녀를 모아 교육한 데서 비롯되었다.
시기별 관련 사건/주요활동
- 1907년 남녀 학생 수가 증가함에 따라 남학교, 여학교로 구분하였고 1908년 2월에 남학교인 숭일학교로 정식 개교하였고,(수피아여학교는 숭일학교보다 두 달 뒤인 4월에 개교함) 초대 교장에는 변요한(John Fairman Preston) 목사가 취임하였다.
-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하다 폐교를 당하기도 했지만, 2022년까지 총 7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 1919년 광주 3.1운동 때는 교사와 전교생이 앞장서서 활동하다가 광주에 소재한 학교 중에서는 가장 많은 4명의 교사와 24명의 학생이 투옥되었다.
- 광주 3.1운동을 주도하면서 숭일학교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었던 교사 최병준과 선봉에 섰던 김철주, 정두범 등 다수의 학생이 광주 3.1운동에 참여한 죄로 옥고를 치렀다.
- 이외에도 특별부 학생이었던 송광춘은 대구 감옥에서 순국하였다.(송광춘은 학생 24명 명단에 포함되지 않음)
- 이후에도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등 독립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다 결국 학교가 폐쇄되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 광복 후인 1945년 11월 21일 6년제 중학교로 복교되었으며, 1951년 7월 5일 교육법 개정으로 중·고등학교가 분리되었다.
- 1971년까지 양림동에 있다가 운암동으로 옮겼고, 1993년에는 현재의 위치인 일곡동으로 교사를 옮겼다.
- 1997년에는 남녀 공학으로 변경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관련 항목
의미관계망
이미지
지도
참고자료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숭일학교 | 광주숭일고등학교 | 현재 명칭 | ||
| 숭일학교 | 양림역사문화마을 | 숭일학교 옛터 | ||
| 숭일학교 | 배유지 | 설립자 | ||
| 배유지 | 광주제중원 | 설립/현 광주기독병원 | ||
| 숭일학교 | 변요한 | 초대 교장/본명 존 프레스톤(John Fairman Preston) | ||
| 숭일학교 | 수피아여학교 | 함께 설립된 학교 | ||
| 숭일학교 | 광주_3.1운동 | 만세운동에 참여 | ||
| 숭일학교 | 광주학생운동 | 독립운동에 참여 | ||
| 광주_3.1운동 | 최병준 | 당시 지도교사 | ||
| 광주_3.1운동 | 송광춘 | 복역 중 옥사 | ||
| 광주_3.1운동 | 김철주 | 참가자/독립유공자 | ||
| 광주_3.1운동 | 정두범 | 참가자/독립유공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