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마을
기본 정보
| 이름 | 백화마을 |
|---|---|
| 이칭 | 학동팔거리 |
| 위도(latitude) | 35.1308096 |
| 경도(longitude) | 126.927791 |
| 역사적 시기 | 근현대 |
| 종류 | 지명 |
| 소재지 | 광주광역시 동구 남문로693번길 11 |
정의 및 개요
특징
- 백화마을이라는 명칭은 백범 김구가 명명한 것으로, 모든 가구가 화목하게 지내라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 백화마을은 1930년대 조선총독부에서 궁민 구제 토목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한 갱생지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
- 갱생지구는 장방형 단지의 중간에 하나의 팔거리를 둔 특이한 형태의 가로 구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갱생지구의 구성 통제와 감시 기능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판옵티콘의 기본 개념을 차용한 구조다. 이렇게 특이한 가로 구성 때문에 학동팔거리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관련 행사 및 사건
- 1920년대 광주의 빈민들이 학동을 비롯한 광주천변에 정착하여 생활하였다.
- 1936년 광주천이 범람하여 빈민들의 생활공간이 없어지자, 일본인 스기야마가 2,000평의 부지를 구입하여 갱생지구를 조성하였다.
- 1946년 백범 김구가 광주시장 서민호에게 금일봉을 건네며 학동팔거리에 가난한 전재민들을 위한 마을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 1947년 학동팔거리와 광주천변 사이에 100세대로 구성된 전재민촌이 조성되었다.
- 1947년 학동팔거리와 백화마을에 해당하는 구역이 학동3구로 분할되었다.
- 통합과 분열을 거쳐 행정구역이 변화하다가 1973년 광주광역시 행정동 개편으로 학3동으로 개편되었다.
- 1998년 행정동 통폐합에 따라 학2동에 속하게 되었다.
- 2002년 학1동과 학2동이 통합됨에 따라 학동에 속하게 되었다.
- 2011년 주거환경개선사업 구역에 포함되면서 마을이 철거되었다.
지역문화적 가치
그 외 정보
- 백화마을 조성 당시, 주민들은 마을의 집들을 마구간과 같이 나란히 이어졌다 하여 말집이라고 불렀다.
- 백화마을과 학동팔거리는 1947년 같은 학동3구에 속하게 되었으며, 그 이후로는 사실상 같은 마을로 여겨지게 되었다.
- 1992년 백화마을에 지어진 백화아파트는 주거환경개선사업 이후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백화마을의 유일한 흔적이다.
- 2014년 백범 김구와 광주의 인연을 기념하는 광주백범기념관이 옛 백화마을 자리에 세워졌다.
관련 항목
의미관계망
지도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웹리소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학동팔거리 | https://gwangju.grandculture.net/gwangju/bukgu/toc/GC60001660 |
| 웹리소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학동 | https://gwangju.grandculture.net/gwangju/search/GC60000130 |
| 웹리소스 | 광주역사문화자원스토리텔링 | 학동팔거리 | http://gjstory.or.kr/sub.html?pid=11&formtype=view&code=38 |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백화마을 | 학동팔거리 | 백화마을은 학동팔거리와 인접한 마을이며 백화마을과 같은 마을로 취급되었다. | ||
| 백화마을 | 학동 | 백화마을은 학동에 있는 마을이다. | ||
| 백화마을 | 김구 | 백화마을의 형성과 명명은 김구에 의해 이루어졌다. | ||
| 백화마을 | 광주백범기념관 | 백화마을 자리에 광주백범기념관이 세워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