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천시민아파트
기본 정보
| 이름 | 광천시민아파트 |
|---|---|
| 영문명 | Gwangcheon Citizen Apartment |
| 위도(latitude) | 35.1652702 |
| 경도(longitude) | 126.8814643 |
| 건립연도 | 1973년 |
| 소재지 | 광주광역시 서구 죽봉대로 119번길 22-9(광천동) |
정의 및 개요
- 1970년,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판자촌 자리에 세워진 서민 아파트이다.
- 6.25 전쟁 후 피난민들이 몰려 살았던 천막과 판자촌을 허물어, 광주시가 거주지 정비 사업을 목적으로 건축한 아파트이다.
건축문화적 특징 및 가치
- 광주 최초의 연립형 아파트이며 광천시민아파트 가,나,다 3개 동이 ㄷ자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고 184가구로 구성되어 있다.
- 93세대는 약 7평, 91세대는 약 10평 정도의 면적이며, 층마다 공동세면장, 공동세탁장, 공동화장실이 있는 구조이다. 현재는 10여 가구만 거주하고 있다.
관련 행사 및 사건
- 1978년 윤상원 열사가 박기순 열사의 권유로 들불야학에서 강사로 활동할 때, 나 동에서 사글세로 거주했었다.
- 야학이 끝나면 강사와 학생들이 여기에 모여 뒤풀이 시간을 함께했었고, 1979년 1월부터는 광천동성당 교리 학습실이던 야학 장소를 이곳 다 동 2층으로 옮겨 교육 활동을 계속하였다.
- 이때 야학에 동참했던 동지들 대부분이 윤상원 열사와 함께 사회운동, 노동운동에 열성적인 청년들이었고, 이들 중 몇몇은 이 광천시민아파트에 방을 얻어서 살기도 하였다.
- 5.18민주화운동 기간에는 들불야학에 속한 열사들과 학생들(노동자들)이 아파트에 모여 민중 저항 언론인 '투사회보'를 발간하였는데, 가난한 아파트 주민들이 돈을 모아 회보 발간에 힘을 보태기도 하였다.
- 당시 철저히 고립되었던 광주의 처참한 상황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그 외 정보
- 수십 년 전부터 광천동은 재개발 사업이 지지부진하게 추진되고 있는데, 언젠가 사업이 완성된다면 이곳에 약 5천 세대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 광천시민아파트가 그 재개발 사업의 중심에 있어 철거될 운명이었으나, 이 빈민 아파트의 역사적 가치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여론이 많다.
- 아직도 논의가 계속 진행 중이지만, 일단 3개의 동 중에서 '나'동을 존치하여 근린공원과 기념관으로 만들기로 하였다.
- 2013년 이곳을 배경으로 <광천시민아파트 가,나,다>라는 제목의 장소 특정 연극이 공연되었다.
관련 항목
의미관계망
이미지
지도
참고자료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광천시민아파트 | 들불야학 | 야학 장소 | ||
| 광천시민아파트 | 윤상원 | 나 동에 거주 | ||
| 광천시민아파트 | 박관현 | 가 동에 거주. 사회운동가 | ||
| 광천시민아파트 | 박용준 | 가 동에 거주. 사회운동가 | ||
| 광천시민아파트 | 투사회보 | 제작 장소 | ||
| 광천시민아파트 | 5.18민주화운동 | 관련 사적지 | ||
| 광천시민아파트 | 박기순 | 야학 동지들과 어울렸던 장소 | ||
| 광천시민아파트 | 광천동성당 | 인접 시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