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현
기본 정보
| 이름 | 박관현 |
|---|---|
| 한자명 | 朴寬鉉 |
| 위도(latitude) | 35.2731138 |
| 경도(longitude) | 126.5025008 |
| 생몰년도 | 1953년~1982년 |
| 성별 | 남성 |
| 국적 | 대한민국 |
| 출생지 | 영광 |
정의 및 개요
- 박관현(朴寬鉉, 1953~1982)은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로 1953년 전남 영광군 불갑면에서 태어났다.
주요 활동/업적/저서/작품 등
- 1978년 전남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광주공단 노동자실태조사에 참여했으며, 학생운동 동아리 '사회조사연구회'를 결성하였다.
- 윤상원 등과 함께 들불야학을 하면서 노동자와 학생들을 가르쳤다.
- 박정희 사망 이후 학도호국단이 폐지되고, 학생회가 부활함에 따라 1980년 4월 치러진 전남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총학생회장에 당선돼 5.18민주화운동과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했다.
- 이후 5월 16일 야간에 금남로에 있는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전남대학교, 조선대학교 등 대학생과 광주시민이 참여하는 민족민주대성회를 주도했다.
- 하지만 신군부가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학생지도부 검거에 나서자 도피해, 전남 여수를 거처 서울 친척집에 은신하면서 도봉구 삼양동, 공릉동 등지의 공장을 다니다 현상금을 노린 누군가의 밀고로 1982년 4월 체포되어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다. 그해 9월 광주지법에서 내란중요임무종사자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재소자 처우 개선과 5.18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40여 일의 단식투쟁을 이어가다 가슴에 통증을 느끼며 쓰려져, 1982년 10월 12일 숨졌다.
지역/사건/단체 내 역할 또는 영향력
- 그가 사망한 후 전남대학교에서는 항의시위가 수차례 크게 일어났으며, 서울의 여러 대학에서 사인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 경찰은 박관현 사망 후 강제로 시신을 탈취, 부검 후 고향인 영광으로 보내버려 5년 후인 1987년에야 망월동 5.18구묘지에 묻힐 수 있었다. 이후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 전남대학교 정문 부근의 '박관현 언덕'에 박관현열사 추모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 전남 영광군 불갑면에 박관현열사추모비가 세워져 있으며, 박관현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1996년 관현장학재단이 설립돼 활동 중이다.
관련 항목
의미관계망
이미지
지도
참고자료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박관현 | 5.18민주화운동 | leads | 전남대 총학생회장 | |
| 들불7열사 | 박관현 | includes | 들불야학 활동 | |
| 들불7열사 | 윤상원 | includes | 들불야학 활동 | |
| 박관현 | 윤상원 | isFellowOf | 함께 들불야학 활동 | |
| 박관현 | 민족민주대성회 | leads | 주도자 | |
| 박관현 | 광주교도소 | isVictimOf | 옥중 단식 투쟁 | |
| 박관현 | 5.18구묘지 | wasBuriedIn | 안장 | |
| 5.18구묘지 | 국립5.18민주묘지 | isRelatedTo |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 | |
| 관현장학재단 | 박관현 | commemorates | 추모단체 | |
| 박관현열사추모비 | 박관현 | commemorates | 추모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