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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리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8월 14일 (목) 17:25 판 (새 문서: __NOTOC__ = '''언론인 최원순의 활동''' = == 이야기 == 최원순(崔元淳, 1896~1936)은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으로, 호는 석...)
언론인 최원순의 활동
이야기
최원순(崔元淳, 1896~1936)은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으로, 호는 석초(石蕉)·석아(石啞)였다. 일본 유학 시절 2.8독립선언을 주도하며 ‘조선청년독립단’을 결성, 독립운동 조직을 규합하는 데 힘썼다.
귀국 후 그는 광주 3.1운동의 전개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면서 1927년 2월 안재홍 등과 함께 신간회 발족에 참여하여 민족주의·사회주의 진영 연대운동에 앞장섰다.
언론인으로서도 일제 식민통치를 비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1926년 8월 22일자 ‘횡설수설’에서 “총독정치는 조선인을 이롭게 하는 인사는 박해하고, 해롭게 하는 자는 절대적으로 보호하는 악당 보호정치”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여 징역 3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옥고를 치른 뒤 고향 광주로 내려온 그는 동아일보 광주지국장을 맡으며 언론을 통한 여론 형성에 힘썼다. 또한 최흥종과 함께 민중계몽과 빈민구제를 목표로 한 지역 유지 모임인 계유구락부를 결성하였다.
최원순의 삶은 독립운동, 언론 활동, 사회운동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사례로, 1920~30년대 광주와 조선의 항일운동사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스토리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