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024-L117
금남군 정충신 장군
학습 주제
임진왜란 당시 고종후가 의병장으로 활약한 과정을 이해합니다. 고종후가 진주성전투에서 김천일, 최경회와 함께 장렬히 순절한 역사적 의미와 그들의 희생을 기리는 진주 창렬사, 포충사, 고씨삼강문과 정기록의 기록을 통해 호남 의병의 충절과 헌신을 살펴봅니다.
이야기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종후는 아버지 고경명을 따라 동생 고인후와 함께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은 금산전투에 참여하였으나 안타깝게도 고경명과 고인후는 그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고종후는 슬픔을 뒤로하고 복수의병장을 자처하며 아버지와 형의 희생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습니다.
고종후는 아버지와 형의 죽음을 잊지 않고 진주전투에 참가했습니다. 그는 천여 명의 의병을 이끌었으며, 일본군의 대군에 끝까지 대항했습니다. 하지만 전세가 점점 기울어지자, 고종후는 마지막까지 함께 싸운 김천일, 최경회와 함께 진주성 촉석루에 올라 남강에 몸을 던져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양산숙 또한 진주전투에 참여하여 이들과 함께 싸웠습니다.
고종후의 희생은 진주 창렬사에 기록되었고, 포충사에도 그 용기와 헌신이 기려졌습니다. 또한 고씨삼강문을 통해 그와 그의 가족이 기려지고 있으며 그들의 일대기는 '정기록'에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임진왜란의 시기에 고종후와 호남의 의병들은 이 땅의 수호자였습니다.
스토리 그래프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 | description/caption | URL |
|---|---|---|---|---|
| 해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고종후 | http://aks.ai/GC60001790 | |
| 해설 | 한국민족대백과사전 | 고종후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3947 | |
| 해설 | 한국민족대백과사전 | 진주전투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4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