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회(등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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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회(등림사)

기본 정보

이름 임회(등림사)
한자명 林檜
이칭 공직(公直), 관해(觀海)
생몰년도 1562년~1624년
성별 남성
국적 조선





정의 및 개요

  • 임회(등림사)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과거에 급제한 뒤 억울한 유배를 겪었으나 인조반정 후 광주목사로 복직되어 남한산성 수축에 힘쓰다 이괄의 난 중 충절을 지키며 순절한 인물이다.

특징

  • 임회(등림사)임형수의 조카이자 송강 정철의 사위이다.
  • 1611년(광해군3년)에 별시 문과에 급제했으나 역모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입었다. 무죄임이 밝혀졌음에도 양산으로 유배되어 10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 인조반정이 일어난 뒤 다시 벼슬에 올라 군기시 첨정을 지냈다. 이후 광주목사(廣州牧使)가 되어 남한산성 보수 공사에 힘썼다.
  • 이괄의 난에 의병을 이끌고 강을 막아 적군을 막으려다가 경안역에서 이괄의 군사에게 죽임을 당했다.
  • 임회(등림사)의 충절을 기리고자 조정에서는 그를 좌승지로 추증하고 정문(旌門)을 세워 충의로운 인물로 기념했다.
  • 등림사에 배향되어 있다.

의미관계망



참고자료

Type Resource Title/Index URL
웹리소스 광주역사문화자원스토리텔링 등림사 http://gjstory.or.kr/sub.html?pid=48&formtype=view&code=1312

Contextual Relations

Source Target Relation Attribute Remark(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