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024-C022
영산강을 바라보고 있는 편액 갤러리, 풍영정
이야기
영산강의 물결이 유유히 흐르는 곁, 풍영정(風詠亭)은 마치 자연과 시문이 만나는 공간처럼 서 있다. 이 정자는 조선 중기의 문인 김언거가 세운 것으로, 그의 벗이자 사유의 동반자였던 김인후, 이황, 기대승 등과의 교유 속에서 문학적 향기를 품게 되었다.
풍영정에는 유독 많은 현판들이 걸려 있다. 무려 58개에 달하는 편액 속에는 약 80여 수의 시문이 새겨져 있다. 그중에는 송인수가 지은 「제계진정(題季珍亭)」과 이를 받은 여러 차운시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나머지 세 편은 김인후, 이황, 임억령이 각각 10수씩 지은 연작 「칠계십영(漆溪十詠)」 중 일부이다. 이처럼 풍영정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당대 선비들이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누고 학문을 기리던 살아 있는 편액 갤러리였다.
특히 한 편의 현판, '제일호산'이라 쓰인 현판에는 한석봉의 글씨가 담겨 있어 글씨와 시, 정자와 풍경이 조화를 이룬다. 영산강과 그 지류인 극락강을 마주한 자리에 앉아 이 현판들을 바라보면, 정자를 둘러싼 문사들의 시정과 풍류가 물결처럼 되살아난다.
『퇴계집(退溪集]』에는 정자의 초창기, 김언거가 여러 문인들에게 시문을 부탁하고 이를 수집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로써 풍영정은 한 사람의 취미로 세운 정자를 넘어, 조선 중기 문단의 교유와 정신이 서린 문화의 장으로 기억된다.
스토리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