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024-C205
의기의 대학자 박광일
이야기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에 자리했던 진천사는 오늘날 자취를 감췄지만, 조선 후기 광주 지역 유학자들의 사후 기억을 간직한 뜻깊은 장소였다. 이 사우에는 박광일(朴光一)을 비롯하여 박상현(朴尙玄), 박충정(朴忠挺), 박치도(朴致道), 박영림(朴榮林) 등 여러 문인과 학자들이 배향되었으며, 조선 유학의 큰 줄기를 이은 송시열(宋時烈)의 제자 박광일은 그 중심에 있었다.
박광일은 강론이 치밀하고 반듯하다는 평을 들으며 ‘치수불루(置水不漏)’라는 찬사를 받았고, 그의 시문은 후일 손자 박중거(朴重擧)가 수습하여 『손재선생문집』으로 간행되었다. 그는 강진 남강서원에도 배향되어, 조선 유학의 대표자였던 송시열과 나란히 모셔졌다.
오늘날 진천사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진천사유허비는 사우의 초건 시기를 1635년으로 전하며, 후손 김동수의 찬문으로 1935년에 재건되었다. 이 유허비는 광주 지역 사림의 교유와 사우의 전통을 기념하는 유산으로 남아 있다.
스토리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