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동구 학2동 서민거주지역에 있던 작은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선형으로 8갈래로 뻗은 길이 5개나 있었던 팔거리마을을 말한다. 지금은 휴먼시아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마을 둘레를 한 바퀴 도는데 20분 정도 걸리는 작은 마을로 좁은 골목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에 공동우물이 있는 작은 광장이 나오고, 광장을 중심으로 8갈래의 길이 방사선으로 뻗어 있었다. 그중 한 길을 선택해 들어가면 다시 작은 광장이 나오고, 그 광장을 중심으로 8갈래의 길이 뻗어나가 다른 팔거리 중심을 볼 수 있는 형태로 마을이 연결되었다.
전국적으로 유일했던 학2동 팔거리 마을은 1936년 일제가 광주천 직강공사를 위해 광주천변에 살던 빈민들을 이곳으로 집단 이주시키면서 만들었다. 일제가 영국 철학자 제라미 벤담이 제안한 원형감원인 ‘판 옵티콘’의 실사판이라는 말을 듣는 특이한 형태의 거주지를 만든 것은 이주 빈민들에 대한 감시를 쉽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실제로 그들은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이들을 ‘방면위원’으로 임명, 마을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고하게 하고, 수시로 종을 울려 주민들을 집합시켰다고 한다.
팔거리 중앙광장은 일제 강점기에는 주민 감시의 중심지였으나. 해방 후에는 마을 사랑방처럼 주민들이 즐겨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는 옛 주민들의 전언이다.[1]
팔거리마을 바로 옆에는 백화마을이 있었다. 1946년 광주를 방문한 백범 김구가 낸 기금을 재원으로 집을 지은 전재민 정착촌으로 ‘100가구가 화목하게 살아라’는 의미가 김구가 이름을 지어주었다. 한다.
백화마을 가옥들은 말집이라고 불렸는데, 집구조가 한지붕 아래 6가구가 나란히 이어진 마구간 모양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백화마을도 재개발로 살아지고 그 자리에는 같은 이름의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