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
기본 정보
| 이름 | 박미 |
|---|---|
| 한자명 | 朴楣 |
| 이칭 | 자첨(子瞻)(자), 존성재(存誠齋)(호), 대민(戴敏)(시호) |
| 생몰년도 | 1433년~1491년 |
| 성별 | 남성 |
정의 및 개요
특징
- 박강생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전지교정감정자 박절문, 아버지는 밀산군 박중손이다.
- 박미는 음보 제도로 벼슬길에 올라 직장이라는 관직을 맡았다. 1458년에 별시 문과에서 을과로 합격하였다. 이듬해 정언이 되었고 이후 사섬시부정·이천부사·광주목사·선농전 사관 등을 지냈다.
- 1489년에는 동부승지로 승진했고 이어 좌부승지·예조참의·대사간 등을 차례로 맡았다.
- 『광주향교지』와 『성종실록』에 박미가 광주목사로 부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의미관계망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웹리소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박미 (朴楣)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0706 |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박미 | 박강생 | 박미는 박강생의 증손이다 | ||
| 박미 | 광주목사 | 박미는 광주목사를 역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