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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준호와 정상호, 광주 부호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야기
광주 근대사의 한켠에는 지역의 부호들이 보여준 책임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현준호는 일찍이 금융과 사회사업에 뜻을 두고 호남은행을 세웠다. 그는 지역 경제를 일으키려 했지만, 일제의 신은행령에 따라 호남은행 동일은행 합병이라는 강제적 통합을 겪으며 아픔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광주 곳곳의 사회사업을 지원했다. 현덕신의원이 입원실까지 갖춘 건물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도 현준호의 융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그는 자신의 거처였던 무송원을 통해 광주 전통문화관 서석당, 입석당, 새인당으로 이어지는 건축적 자취를 남겼고, 이는 오늘날 광주문화재단_전통문화관의 일부가 되었다.
한편 정상호는 도쿄 유학생 시절 2.8독립선언을 주도하며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렸다. 귀국 후에는 신문잡지종람소와 연결되어 광주의 청년들을 계몽했고, 광주_3.1운동의 확산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는 또한 계유구락부 활동에 참여해 지역 유지들과 함께 민중운동을 이어갔다.
이처럼 현준호와 정상호는 단순한 부호가 아니었다. 한 사람은 은행과 건축, 의료 지원을 통해, 다른 한 사람은 독립운동과 계몽 활동을 통해 시대가 요구하는 책무를 다했다. 그들의 선택은 부의 사적 축적이 아닌 사회와 민족을 위한 헌신이었고, 광주가 기억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참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스토리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