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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 Lee2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6월 29일 (일) 17:07 판 (새 문서: __NOTOC__ = '''임방울의 국내외 공연과 음반 녹음''' = == 이야기 == 임방울(林芳蔚)은 무대 위의 명창일 뿐 아니라, 시대를 살아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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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방울의 국내외 공연과 음반 녹음

이야기

임방울(林芳蔚)은 무대 위의 명창일 뿐 아니라, 시대를 살아낸 예인이었다. 1943년, 그는 일본 징용 재일조선인 위문공연에 참여해, 큐슈와 세토나이카이에서 소리로 위로를 전했다. 전쟁과 식민 치하의 어수선한 시대에도 그의 무대는 멈추지 않았다.

임방울은 임방울협률사를 조직하고 20~30여 명의 단원을 이끌며 공연 활동을 이어갔다. 이 협률사는 임방울명창대회를 주최하며 창극 대신 판소리 무대 중심의 공연으로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장월중선(張月中仙) 역시 이 단체의 일원이 되어 무대에 함께 섰다.

1950년대, 임방울은 국내외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고전음악제전, 전국명창대회, 조선명창연주회에 참여하였고, <쑥대머리> 유성기음반을 비롯해 국립국악원 연주실에서 녹음한 <수궁가>와 <적벽가> 완창 음반을 남겼다. 이는 그가 남긴 귀중한 유산이자, 소리의 기록이었다.

1959년에는 창극 <견우 직녀>로 일본 무대에 섰으며, 같은 해 조총련 관련 공연까지 수행했다. 그러나 이 활동은 1960년 경찰 연행과 고문이라는 시련으로 이어졌다. 공연이 원인이 되어 고초를 겪은 것이다.

그의 소리는 음반으로도 남았다. 그는 직접 창작한 〈명기명창 팔도유람가〉를 통해 예인의 면모를 드러냈다. 임방울은 무대를 넘어 기록과 기억 속에서 살아 있는, 진정한 시대의 명창이었다.

스토리 그래프



참고자료

type resource title description/caption URL
단행본 국립중앙도서관 전지영, 『임방울:우리 시대 최고의 소리 광대』, 을유문화사, 2010. https://www.nl.go.kr/NL/contents/search.do#viewKey=116280332&viewType=AH1
단행본 국립중앙도서관 천이두, 『전설의 명창 임방울:고독한 광대의 생애』, 한길사, 2009. https://www.nl.go.kr/NL/contents/search.do#viewKey=97695784&viewType=A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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