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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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재성(張載性,1908~1950)은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등학교 전신) 졸업생으로 재학중 독서회의 모태인 성진회에 가입, 주도했다. 일본 유학 중 모교에서 학생동맹휴학 사건이 발생하자 1928년 귀국, 학생운동을 지도했으며, 다음해 11월 대대적인 항일학생시위인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발생하자 광주학생을 지도하는 책임을 맡았다. 이 사건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고, 이후에도 항일운동을 벌이다 수차례 검거당했다. 해방 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전남지부 조직부장 등을 역임했다. 민주주의민족전선에서 활동하며, 3차례 38선 이북을 왕래하다 1948년 검거돼, 광주형무소에서 복역하다 1950년 7월 사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