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현 강등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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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inition
- 1488년(성종 19) 광주목(光州牧)에서 광산현(光山縣)으로 강등된 사건이다. 현(縣)으로 강등된 지 13년 만인 1501년(연산군 7) 광주목 복호되었다.
- 『성종실록』에 광산현 강등 사건과 관련된 기록이 전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정부(議政府) 좌찬성(左贊成) 이철견(李鐵堅)이 와서 성종에게 아뢰기를, “광주 판관 우윤공은 신의 생질(甥姪)인데, 이달 초2일 밤2경(更)에 관아(官衙)로 돌아올 때, 누가 쏜 화살에 맞아 왼쪽 팔뚝을 다쳤습니다. 그런데도 아전(衙前)들은 매우 경황(驚惶)함이 없었고, 목사(牧使)도 변고(變故)를 듣고 또한 두려워하여 즉시 수색해 잡지 않았으므로, 우윤공은 곧 처자(妻子)를 데리고 화순(和順)으로 갔습니다. 청컨대 속히 조관(朝官)을 보내어 추국(推鞫)하게 하소서.” 하니, 성종이 전교하기를, “이는 진실로 비상(非常)한 변(變)이다. 어찌 부민이 수령(守令)을 해(害)하려고 하는가? 마땅히 강명(剛明)한 조관을 택해서 보내어 국문(鞫問)하도록 하라.” 하고, 곧 이종호(李宗顥)를 보내었다.
- 이후 1624년(인조 2)과 1701년(숙종 27) 등 두 차례에 걸쳐 광산현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 목(牧)에서 현(縣)으로 칭호를 강등한 일은 국가가 후일을 경계하고 풍속을 바로 잡으려기 위함이었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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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현_강등_사건 | Event | 광산현 강등 사건(1488) | 광산현 강등 사건 | http://dh.aks.ac.kr/~gwangju/wiki/index.php/광산현_강등_사건 | http://dh.aks.ac.kr/~gwangju/wiki/images/icon/2023/광산현_강등_사건.jpg |
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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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목 | 우윤공 | 우윤공은 광주목의 판관이다. | ||
광주_판관 | 우윤공 | 1487년 광주 판관 우윤공이 괴한에게 화살에 맞아 부상을 당했다. | ||
광주목 | 광산현 | 1488년 광주목에서 광산현으로 강등되었다. | ||
광산현_강등_사건 | 광주목_복호 | 1501년 강등된 광산현은 광주목으로 복호되었다. |
Web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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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광산현 강등 사건 | http://aks.ai/GC60000758 | |
참고 | 조선왕조실록 | 광주 판관 우윤공이 부상한 사건에 대한 추국을 위해 이종호를 보내다 | https://sillok.history.go.kr/id/kia_11811013_001 | |
참고 | 조선왕조실록 | 영사 윤필상이 광주를 현으로 강등시키고 간사한 관리들을 강제 이주시키기를 아뢰다 | https://sillok.history.go.kr/id/kia_11901027_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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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ography
type | bibliographic index | online resource | ur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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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 광주직할시사편찬위원회, 『광주시사』,1, 광주직할시, 1992. | ||
단행본 | 국립광주박물관, 『유구한 문화의 도시 광주』, 국립광주박물관, 2008. |
Notes
Semantic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