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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지도==
 
==이야기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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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2024-C010|근대·현대의 누정 변천과 장소의 기억]]
** [[E2024-C201|희경루방회도, 그림으로 남은 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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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C131|석아정의 변천: 독립운동, 사회운동, 예술을 품다]]
** [[E2024-C202|희경루를 묘사한 옛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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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C137|석서정의 기억 위에 세운 양파정, 정낙교의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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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C201|희경루방회도, 그림으로 남은 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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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C202|희경루를 묘사한 옛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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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C182|하나는 자리를 비우고, 하나는 이름을 바꾸었다:초은정과 정각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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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C208|경의재가 된 소해정, 절의의 공간으로]]
  
 
== 주석 ==
 
== 주석 ==

2025년 12월 22일 (월) 20:48 기준 최신판

희경루방회도, 그림으로 남은 연회

이야기

1567년, 전라도 희경루(喜慶樓)에서는 특별한 만남이 열렸다. 1546년 증광시 문과무과에 급제한 동기생 다섯 명이 20여 년 만에 다시 모여 방회(榜會)를 가진 것이다. 이들의 이름은 최응룡, 강섬, 임복, 남효용, 유극공이다. 각기 문과 장원, 병과, 을과 등으로 급제한 이들은 그 후 광주목사, 전라도관찰사, 승문원부정자, 전라도병마우후, 낙안군수 등으로 출사하였다.

이들의 방회는 단순한 회포가 아닌,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위치를 함께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장소는 당시 활터로도 기능했던 희경루(喜慶樓)였고, 이 장면은 회화를 통해 기록되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희경루방회도(喜慶樓榜會圖)이다. 이 회화는 희경루방회의 순간을 포착한 계회도(契會圖)이며, 발문은 모임의 주도자 최응룡이 남겼다. 현재 이 작품은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보물) 희경루방회도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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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지도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