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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천]]은 도심을 가로지르며 시대마다 다른 다리들을 품어왔다. 옛 [[광주교]] 아래 둔치에서는 1919년 [[광주_3.1운동|3·1운동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판결문에는 태극기를 숨겨둔 가마니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이들의 행렬이 [[부동교]]를 지나 상류로 이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 그 자리는 학생독립운동코스의 한 구간으로 남아, 물길 따라 흘러온 광주의 항일 정신을 되새기게 한다. | [[광주천]]은 도심을 가로지르며 시대마다 다른 다리들을 품어왔다. 옛 [[광주교]] 아래 둔치에서는 1919년 [[광주_3.1운동|3·1운동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판결문에는 태극기를 숨겨둔 가마니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이들의 행렬이 [[부동교]]를 지나 상류로 이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 그 자리는 학생독립운동코스의 한 구간으로 남아, 물길 따라 흘러온 광주의 항일 정신을 되새기게 한다. | ||
| − | 광주천을 따라 이어진 [[광주천_교량|교량들]]은 도시의 성장과 함께 이름과 형태를 바꾸었다. 옛 [[광주대교]]는 오늘날 신광주교로 불리며, 변화 속에서도 사람들의 발길을 잇는다. [[양동교]], | + | 광주천을 따라 이어진 [[광주천_교량|교량들]]은 도시의 성장과 함께 이름과 형태를 바꾸었다. 옛 [[광주대교]]는 오늘날 신광주교로 불리며, 변화 속에서도 사람들의 발길을 잇는다. [[양동교]], 상무대교, [[중앙대교]] 등은 광주천을 건너는 주요 통로가 되었고, [[남광보도교]]는 시민들의 일상적 산책로로 자리 잡았다. |
한편 [[발산마을]] [[뽕뽕다리|발산마을 뽕뽕다리]]와 방림동 뽕뽕다리 같은 작은 다리들은 소리 나는 다리로 불리며, 아이들의 추억과 동네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이름 그대로 ‘뽕뽕’ 소리를 내던 그 다리는 [[뽕뽕다리|뽕뽕다리]]라는 지역 고유의 생활 문화유산으로 남았다. | 한편 [[발산마을]] [[뽕뽕다리|발산마을 뽕뽕다리]]와 방림동 뽕뽕다리 같은 작은 다리들은 소리 나는 다리로 불리며, 아이들의 추억과 동네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이름 그대로 ‘뽕뽕’ 소리를 내던 그 다리는 [[뽕뽕다리|뽕뽕다리]]라는 지역 고유의 생활 문화유산으로 남았다. | ||
2025년 10월 18일 (토) 13:51 기준 최신판
광주천의 다리들
이야기
광주천은 도심을 가로지르며 시대마다 다른 다리들을 품어왔다. 옛 광주교 아래 둔치에서는 1919년 3·1운동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판결문에는 태극기를 숨겨둔 가마니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이들의 행렬이 부동교를 지나 상류로 이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 그 자리는 학생독립운동코스의 한 구간으로 남아, 물길 따라 흘러온 광주의 항일 정신을 되새기게 한다.
광주천을 따라 이어진 교량들은 도시의 성장과 함께 이름과 형태를 바꾸었다. 옛 광주대교는 오늘날 신광주교로 불리며, 변화 속에서도 사람들의 발길을 잇는다. 양동교, 상무대교, 중앙대교 등은 광주천을 건너는 주요 통로가 되었고, 남광보도교는 시민들의 일상적 산책로로 자리 잡았다.
한편 발산마을 발산마을 뽕뽕다리와 방림동 뽕뽕다리 같은 작은 다리들은 소리 나는 다리로 불리며, 아이들의 추억과 동네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이름 그대로 ‘뽕뽕’ 소리를 내던 그 다리는 뽕뽕다리라는 지역 고유의 생활 문화유산으로 남았다.
이렇듯 광주천의 다리들은 독립의 함성이 울려 퍼진 역사적 무대이자, 세대와 세대를 잇는 삶의 통로로서 지금도 도시의 기억을 지탱하고 있다.
스토리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