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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장로]]는 광주의 심장이라 불리던 거리였다. 1970~80년대, 이곳의 쇼윈도마다 사람들의 꿈과 세대의 유행이 비쳤다. 충장로3가에서 충장로5가까지 이어지는 상권에는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가게들이 있었다. [[전병원양복점]]과 [[도미패션]], [[아리랑주단]] 같은 상점들은 지금도 그 시절의 기억을 품고 문을 연다. | [[충장로]]는 광주의 심장이라 불리던 거리였다. 1970~80년대, 이곳의 쇼윈도마다 사람들의 꿈과 세대의 유행이 비쳤다. 충장로3가에서 충장로5가까지 이어지는 상권에는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가게들이 있었다. [[전병원양복점]]과 [[도미패션]], [[아리랑주단]] 같은 상점들은 지금도 그 시절의 기억을 품고 문을 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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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여성들의 혼수품을 준비하던 [[혼수의_거리]]에는 [[도미패션]]과 [[아리랑주단]]이 줄지어 있었다. 특히 [[이화성]]이 세운 [[미모사양장점]]은 한때 충장로의 유행을 이끌며 결혼식 복장의 대명사로 불렸다. 시대가 변해 [[금호월드]]나 [[충금지하상가]] 같은 새로운 상권이 생겨났지만, 이 거리의 정체성은 여전히 오래된 가게들이 지켜왔다. | 한편, 여성들의 혼수품을 준비하던 [[혼수의_거리]]에는 [[도미패션]]과 [[아리랑주단]]이 줄지어 있었다. 특히 [[이화성]]이 세운 [[미모사양장점]]은 한때 충장로의 유행을 이끌며 결혼식 복장의 대명사로 불렸다. 시대가 변해 [[금호월드]]나 [[충금지하상가]] 같은 새로운 상권이 생겨났지만, 이 거리의 정체성은 여전히 오래된 가게들이 지켜왔다. | ||
2025년 10월 15일 (수) 19:16 기준 최신판
충장로 상권, 오래된 가게의 르네상스
이야기
충장로는 광주의 심장이라 불리던 거리였다. 1970~80년대, 이곳의 쇼윈도마다 사람들의 꿈과 세대의 유행이 비쳤다. 충장로3가에서 충장로5가까지 이어지는 상권에는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가게들이 있었다. 전병원양복점과 도미패션, 아리랑주단 같은 상점들은 지금도 그 시절의 기억을 품고 문을 연다.
1950년대에 문을 연 대흥양복점은 재단사 김백운이 손끝으로 빚은 양복으로 이름을 알렸고, 그의 제자 전병원이 뒤를 이어 전병원양복점을 운영했다. 이 가게는 세월을 견디며 ‘백년가게’로 지정될 만큼 지역 상권의 상징이 되었다.
한편, 여성들의 혼수품을 준비하던 혼수의_거리에는 도미패션과 아리랑주단이 줄지어 있었다. 특히 이화성이 세운 미모사양장점은 한때 충장로의 유행을 이끌며 결혼식 복장의 대명사로 불렸다. 시대가 변해 금호월드나 충금지하상가 같은 새로운 상권이 생겨났지만, 이 거리의 정체성은 여전히 오래된 가게들이 지켜왔다.
최근 들어 추진된 충정상권 르네상스 사업은 이러한 기억을 복원하고, 청년 창업과 예술이 공존하는 새로운 상권으로 재생하려는 시도다. 그 일환으로 조성된 복합문화공간 충장22에는 옛 상점의 간판과 사진이 전시되어, 과거와 현재가 한 자리에 서 있다. 세월을 견딘 상점의 불빛은 이제 다시 충장로의 밤을 밝히며, ‘오래된 가게의 르네상스’를 써 내려가고 있다.
스토리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