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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봉산 태실]] 안에는 태항아리, 태지석, 금박 조각 등이 들어있었다. [[태봉산]]에 관련된 이야기가 그저 전설이려니 생각했는데, 사실이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 * [[태봉산 태실]] 안에는 태항아리, 태지석, 금박 조각 등이 들어있었다. [[태봉산]]에 관련된 이야기가 그저 전설이려니 생각했는데, 사실이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 ||
| − | * [[태봉산]]은 시가지개발로 1968년에 없어졌고, [[태봉산 태실]]은 [[ | + | * [[태봉산]]은 시가지개발로 1968년에 없어졌고, [[태봉산 태실]]은 [[광주역사민속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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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24일 (수) 23:29 판
Definition
- 1624년에 태어난 용성대군의 태를 담았던 태봉산 태실은 1928년 발견될 때까지 태봉산에 묻혀 있었다.
- 가뭄의 원인을 태봉산에 누군가가 시신을 암매장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던 당시 주민들이 호미를 들고 파묘 소동을 벌였는데, 그곳에서 태봉산 태실이 발견되었다.
- 태봉산 태실 안에는 태항아리, 태지석, 금박 조각 등이 들어있었다. 태봉산에 관련된 이야기가 그저 전설이려니 생각했는데, 사실이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 태봉산은 시가지개발로 1968년에 없어졌고, 태봉산 태실은 광주역사민속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광주역사문화자원스토리텔링 http://gjstory.or.kr/__upload/resources/Dm249b4ac/1515637214_273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