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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권율]]이 광주목사로 봉직했던 일을 비롯해, 그의 11세손 [[권재윤]]이 목사로 부임하여 [[권율_창의비|권율 창의비]]를 세운 사실은 가문의 충절을 이어간 기록이다. [[양응정]]은 [[광주향약]]을 주관하며 지역 자치와 풍속 교화를 이끌었고, 김선은 목사로 있으면서 [[광주향교]]를 중수해 학문의 터전을 새롭게 했다. [[한성우]]는 월소루를 짓고,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목사로 송덕비를 남겼다. |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권율]]이 광주목사로 봉직했던 일을 비롯해, 그의 11세손 [[권재윤]]이 목사로 부임하여 [[권율_창의비|권율 창의비]]를 세운 사실은 가문의 충절을 이어간 기록이다. [[양응정]]은 [[광주향약]]을 주관하며 지역 자치와 풍속 교화를 이끌었고, 김선은 목사로 있으면서 [[광주향교]]를 중수해 학문의 터전을 새롭게 했다. [[한성우]]는 월소루를 짓고,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목사로 송덕비를 남겼다. | ||
| − | 또한 [[이경함]], [[이배원]], | + | 또한 [[이경함]], [[이배원]], 이후원, 김광혁, [[이상황]], [[신익전]], [[홍명원]] 같은 목사들도 저마다의 선정을 펼쳐 고을의 기억 속에 새겨졌다. 이 비들은 단순한 돌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다스림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교훈적 상징이었다. |
광주읍성의 동헌과 가까운 곳에 있던 월소루, 그리고 이를 기록한 『[[하모당기]]』는 지방관의 청렴과 공덕을 칭송하는 전통을 잘 보여준다. | 광주읍성의 동헌과 가까운 곳에 있던 월소루, 그리고 이를 기록한 『[[하모당기]]』는 지방관의 청렴과 공덕을 칭송하는 전통을 잘 보여준다. | ||
2025년 9월 22일 (월) 23:46 기준 최신판
광주를 위해 헌신한 광주목사를 기리는 비
이야기
광주공원에 들어서면 눈길을 끄는 광주공원 선정비군이 있다. 이곳에는 옛 광주목사들의 공적을 기리는 광주목사 선정비가 모여 있다. 백성을 사랑하고 지역을 다스림에 있어 덕정을 펼친 관리들의 이름이 돌비에 새겨져, 오늘날까지 그들의 자취를 전한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권율이 광주목사로 봉직했던 일을 비롯해, 그의 11세손 권재윤이 목사로 부임하여 권율 창의비를 세운 사실은 가문의 충절을 이어간 기록이다. 양응정은 광주향약을 주관하며 지역 자치와 풍속 교화를 이끌었고, 김선은 목사로 있으면서 광주향교를 중수해 학문의 터전을 새롭게 했다. 한성우는 월소루를 짓고,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목사로 송덕비를 남겼다.
또한 이경함, 이배원, 이후원, 김광혁, 이상황, 신익전, 홍명원 같은 목사들도 저마다의 선정을 펼쳐 고을의 기억 속에 새겨졌다. 이 비들은 단순한 돌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다스림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교훈적 상징이었다.
광주읍성의 동헌과 가까운 곳에 있던 월소루, 그리고 이를 기록한 『하모당기』는 지방관의 청렴과 공덕을 칭송하는 전통을 잘 보여준다.
이렇듯 광주목사 선정비는 광주를 위해 헌신한 인물들을 기억하고 오늘날에도 그 정신을 전하는 살아 있는 역사책이라 할 수 있다.
스토리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