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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22일 (월) 14:00 판
기본 정보
| 이름 | 효자김공형제합지 |
|---|---|
| 한자명 | 孝子金公兄弟合誌 |
| 장르 | 합지/묘지명 |
| 작자 | 서형수 |
| 발표연도 | 18세기 |
| 발표지면 | 명고전집 |
정의 및 개요
- 효자김공형제합지孝子金公兄弟合誌는 광주목사를 지낸 서형수(徐瀅修, 1749~1824)가 광주의 효자 형제 김광준(金光雋)과 김광원(金光源)이 묻힌 묘지에 바치기 위해 작성한 합지(合誌)이다.
특징
- 효자김공형제합지孝子金公兄弟合誌는 서형수의 문집인 『명고전집(明臯全集)』(간행년 미상) 제16권에 실려있다. 효자 김공 형제 합지는 서형수가 광주목사로 재임하던 1796년에 지은 글로 추정된다.
- 서형수는 달성 서씨로 대제학 서명응(徐命膺, 1716~1787)의 차남이며 서호수(徐浩修, 1736~1799)의 동생이자,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숙부이다. 서명응, 서호수, 서형수, 서유구는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중시하여 과학, 농학, 천문학, 역학 등의 영역에서 업적을 남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 효자김공형제합지孝子金公兄弟合誌에서 서형수는 광주목사로 부임했을 당시 마을의 수재인 김순(金洵)이 직접 요청하여 이 합지를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보통 묘지명을 합쳐서 합지로 짓지 않으나, 김광준(金光雋, 1721~1787)ㆍ김광원(金光源, 1723~1787) 형제는 매우 효성이 지극하여 김광준의 아들인 김순이 서형수를 설득하여 이 합지를 짓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 형제가 삼년상을 지내면서 흘린 눈물로 무덤의 잔디가 죽고 범이 호위해줄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1]
의미관계망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웹리소스 | 한국고전종합DB | 효자 김공 형제 합지 |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0582A_0170_010_0080_2022_005_XML |
| 웹리소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서형수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8294 |
주석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효자김공형제합지孝子金公兄弟合誌 | 서형수 | 효자김공형제합지孝子金公兄弟合誌는 서형수가 지었다. | ||
| 서형수 | 광주목사 | 서형수는 광주목사를 역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