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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시장]]은 광주시 북구 풍향동에 위치한 서방시장은 1960년대 담양, 순창, 구례, 곡성 등 전남 북부지역 농산물과 임산물이 거래되면서 형성됐다. 서방시장이 번창하게 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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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과 1968년 전남지역을 강타한 가뭄 때문이었다. 가뭄으로 쌀값이 폭등하자 전남 인근의 농민들이 쌀을 팔아 생필품이나 잡곡으로 바꾸었는데 이 때문에 다량의 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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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시장에 출시되면서 활기를 띠었다. 1968년 개설된 시장은 당시 70여 곳의 점포들 가운데 미곡을 비롯한 곡물상이 40여 곳에 이르렀다. 1973년 양곡 유통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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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되면서 얼마 동안 명맥을 유지하기는 했으나 주변 지역이 주택단지로 바뀌고 쌀의 자급으로 시장은 일반 생필품의 소매시장으로 점차 전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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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에 서방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던 상인들이 단속에 밀려 자리 잡은 말바우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근처에 대형마트가 생기며 규모가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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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서방시장/김희련]]
 
[[분류:서방시장/김희련]]

2022년 8월 11일 (목) 01:19 판

서방시장은 광주시 북구 풍향동에 위치한 서방시장은 1960년대 담양, 순창, 구례, 곡성 등 전남 북부지역 농산물과 임산물이 거래되면서 형성됐다. 서방시장이 번창하게 된 것은 1967년과 1968년 전남지역을 강타한 가뭄 때문이었다. 가뭄으로 쌀값이 폭등하자 전남 인근의 농민들이 쌀을 팔아 생필품이나 잡곡으로 바꾸었는데 이 때문에 다량의 쌀이 서방시장에 출시되면서 활기를 띠었다. 1968년 개설된 시장은 당시 70여 곳의 점포들 가운데 미곡을 비롯한 곡물상이 40여 곳에 이르렀다. 1973년 양곡 유통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강화되면서 얼마 동안 명맥을 유지하기는 했으나 주변 지역이 주택단지로 바뀌고 쌀의 자급으로 시장은 일반 생필품의 소매시장으로 점차 전환되었다. 1960년대 후반에 서방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던 상인들이 단속에 밀려 자리 잡은 말바우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근처에 대형마트가 생기며 규모가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