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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_녹두서점|녹두서점]]은 1977년부터 동구 장동에서 운영되었던 사회과학서점이었으며, 유신체제 말기 암울한 시대에 청년과 학생들이 모여 열띤 시국 토론을 벌이던 사랑방이기도 했다. 1980년 5월 17일 밤, 전국에서 많은 민주인사들이 예비검속되자 청년과 학생들은 이곳에 모여 격문과 현수막을 제작했다. 항쟁 기간 중엔 광천동 들불야학에서 활동하던 강학들과 노동자들도 이곳을 중심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서로 연락을 취하며 '투사회보'를 제작해 광주 시내에 살포, 광주의 소식을 시시각각 시민들에게 알렸다. 녹두서점은 5·18민주화운동의 충격으로 그해 6월에 폐업했으며, 지금은 옛터만 남아있다.
 
[[5.18_녹두서점|녹두서점]]은 1977년부터 동구 장동에서 운영되었던 사회과학서점이었으며, 유신체제 말기 암울한 시대에 청년과 학생들이 모여 열띤 시국 토론을 벌이던 사랑방이기도 했다. 1980년 5월 17일 밤, 전국에서 많은 민주인사들이 예비검속되자 청년과 학생들은 이곳에 모여 격문과 현수막을 제작했다. 항쟁 기간 중엔 광천동 들불야학에서 활동하던 강학들과 노동자들도 이곳을 중심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서로 연락을 취하며 '투사회보'를 제작해 광주 시내에 살포, 광주의 소식을 시시각각 시민들에게 알렸다. 녹두서점은 5·18민주화운동의 충격으로 그해 6월에 폐업했으며, 지금은 옛터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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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10일 (수) 20:51 판

Definition

녹두서점은 1977년부터 동구 장동에서 운영되었던 사회과학서점이었으며, 유신체제 말기 암울한 시대에 청년과 학생들이 모여 열띤 시국 토론을 벌이던 사랑방이기도 했다. 1980년 5월 17일 밤, 전국에서 많은 민주인사들이 예비검속되자 청년과 학생들은 이곳에 모여 격문과 현수막을 제작했다. 항쟁 기간 중엔 광천동 들불야학에서 활동하던 강학들과 노동자들도 이곳을 중심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서로 연락을 취하며 '투사회보'를 제작해 광주 시내에 살포, 광주의 소식을 시시각각 시민들에게 알렸다. 녹두서점은 5·18민주화운동의 충격으로 그해 6월에 폐업했으며, 지금은 옛터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