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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89년, 문빈정사에서 뜻깊은 결혼식이 열렸다. 신랑은 시인이자 민주화 운동가였던 [[김남주|김남주(金南柱)]], 신부는 당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총무였던 | + | 1989년, 문빈정사에서 뜻깊은 결혼식이 열렸다. 신랑은 시인이자 민주화 운동가였던 [[김남주|김남주(金南柱)]], 신부는 당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총무였던 박광숙이었다. 이 결혼식의 주례는 지선 스님, 사회는 시인 [[고은|고은]]이 맡았다. 김남주와 박광숙의 결혼식은 삶과 신념, 저항과 사랑이 만나는 자리였다. |
박광숙은 1978년 남민전 조직활동 중 김남주 시인을 만났다. 하지만 남민전 사건으로 교직에서 해직되었고, 세월이 흐른 뒤 다시 교단에 섰다. 김남주는 감옥과 검열 속에서도 시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문빈정사에서 맺은 인연은, 단지 두 사람의 결합을 넘어 시대의 고통을 견디는 이들의 연대를 상징했다. | 박광숙은 1978년 남민전 조직활동 중 김남주 시인을 만났다. 하지만 남민전 사건으로 교직에서 해직되었고, 세월이 흐른 뒤 다시 교단에 섰다. 김남주는 감옥과 검열 속에서도 시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문빈정사에서 맺은 인연은, 단지 두 사람의 결합을 넘어 시대의 고통을 견디는 이들의 연대를 상징했다. | ||
2025년 6월 30일 (월) 15:47 기준 최신판
무등산 첫 번째 절, 문빈정사와 시인 김남주
이야기
무등산 자락에 깃든 문빈정사, 이곳은 무등산의 첫 번째 절로 그 고요한 법당 안에는 한 시대의 시와 저항이 스며 있다. 승려 지선(知詵)은 문빈정사의 주지로서, 이곳을 단지 기도처로 남겨두지 않았다. 그에게 문빈정사는 사유의 공간이자 연대의 자리였다.
1989년, 문빈정사에서 뜻깊은 결혼식이 열렸다. 신랑은 시인이자 민주화 운동가였던 김남주(金南柱), 신부는 당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총무였던 박광숙이었다. 이 결혼식의 주례는 지선 스님, 사회는 시인 고은이 맡았다. 김남주와 박광숙의 결혼식은 삶과 신념, 저항과 사랑이 만나는 자리였다.
박광숙은 1978년 남민전 조직활동 중 김남주 시인을 만났다. 하지만 남민전 사건으로 교직에서 해직되었고, 세월이 흐른 뒤 다시 교단에 섰다. 김남주는 감옥과 검열 속에서도 시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문빈정사에서 맺은 인연은, 단지 두 사람의 결합을 넘어 시대의 고통을 견디는 이들의 연대를 상징했다.
문빈정사는 무등산의 품 안에 있다. 그러나 그 고요한 절간이 품은 이야기들은 산처럼 단단하고, 시만큼 깊다. 고은의 목소리, 지선의 염화미소, 그리고 김남주와 박광숙의 서약은 지금도 그 법당 어딘가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스토리 그래프
이야기 지도
- 광주의 문학인
- 무등산의 사찰이 간직해온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