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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광주 선교 지회의 첫 신자가 된 건달 출신 [[최흥종]]은 1909년 목포에서 광주로 급히 오는 중인 포사이드 선교사를 마중하라는 부탁을 받았다. 선교사를 만나 광주 효천 지역을 지나다가 처참한 몰골로 죽어가는 여성 한센병 환자를 만났는데, 포사이드 선교사가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외투를 벗어주고, 부축하여 도와주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광주로 한센병 환자들이 몰려오자, 최흥종은 자신의 봉선동 땅 1000평을 기증하여 나환자 수용소 및 치료소를 만들도록 하였다(1912). 이것이 [[ | + | * 광주 선교 지회의 첫 신자가 된 건달 출신 [[최흥종]]은 1909년 목포에서 광주로 급히 오는 중인 포사이드 선교사를 마중하라는 부탁을 받았다. 선교사를 만나 광주 효천 지역을 지나다가 처참한 몰골로 죽어가는 여성 한센병 환자를 만났는데, 포사이드 선교사가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외투를 벗어주고, 부축하여 도와주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광주로 한센병 환자들이 몰려오자, 최흥종은 자신의 봉선동 땅 1000평을 기증하여 나환자 수용소 및 치료소를 만들도록 하였다(1912). 이것이 [[광주나병원]]이다. 전염을 두려워한 주민들의 반대로 1926년 여수로 옮겨 '애양원'이라는 새 이름으로 바뀌었다. <ref> 소진탁, "광주나병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참고자료 == | == 참고자료 == | ||
2025년 6월 13일 (금) 14:18 판
기본 정보
| 이름 | 광주나병원 |
|---|---|
| 유형 | 병원 |
| 설립/폐지시기 | 1911~1962 |
정의 및 개요
- 1909년 포사이드 선교사가 길에 쓰러진 한센병 환자를 치료한 것이 설립 동기가 되었다. 1911년 4월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봉선리에서 우월순 선교사에 의해 ‘환자 진료, 선교, 봉사’를 설립 목적으로 광주나병원을 시작하였다.
특징
- 광주 선교 지회의 첫 신자가 된 건달 출신 최흥종은 1909년 목포에서 광주로 급히 오는 중인 포사이드 선교사를 마중하라는 부탁을 받았다. 선교사를 만나 광주 효천 지역을 지나다가 처참한 몰골로 죽어가는 여성 한센병 환자를 만났는데, 포사이드 선교사가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외투를 벗어주고, 부축하여 도와주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광주로 한센병 환자들이 몰려오자, 최흥종은 자신의 봉선동 땅 1000평을 기증하여 나환자 수용소 및 치료소를 만들도록 하였다(1912). 이것이 광주나병원이다. 전염을 두려워한 주민들의 반대로 1926년 여수로 옮겨 '애양원'이라는 새 이름으로 바뀌었다. [1]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이미지 | 서울통신 | 최흥종이 땅 1천평을 기증해 설립한 광주나병원 | http://seoults.com/data/cheditor4/2004/bc6e025ccbeb3f5b6a141538b3ce66aca6d1ab54.jpg |
이미지
주석
- ↑ 소진탁, "광주나병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