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충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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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호남의병을 이끌고 금산(錦山)싸움에서 순절한 고경명과 종후, 인후 3부자와 유팽로, 안영을 모신 곳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헐리지 않았던 전남지역 2대 서원 중 하나이다. | *임진왜란 때 호남의병을 이끌고 금산(錦山)싸움에서 순절한 고경명과 종후, 인후 3부자와 유팽로, 안영을 모신 곳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헐리지 않았던 전남지역 2대 서원 중 하나이다. | ||
*왜란 후 호남유생들이 충의로운 인물을 기리고자 세웠는데 1603년 고경명의 후손과 제자인 박지효등이 임금에게 청하여 ‘포충(褒忠)’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 *왜란 후 호남유생들이 충의로운 인물을 기리고자 세웠는데 1603년 고경명의 후손과 제자인 박지효등이 임금에게 청하여 ‘포충(褒忠)’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 ||
− | *옛 사당과 동 ·서재는 본래의 위치에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채로 남아있다. 포충사에 | + | *옛 사당과 동 ·서재는 본래의 위치에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채로 남아있다. 포충사에 소장되어있는 문적(文籍) 4종 9점은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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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4일 (수) 17:30 판
Definition
- 임진왜란 때 호남의병을 이끌고 금산(錦山)싸움에서 순절한 고경명과 종후, 인후 3부자와 유팽로, 안영을 모신 곳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헐리지 않았던 전남지역 2대 서원 중 하나이다.
- 왜란 후 호남유생들이 충의로운 인물을 기리고자 세웠는데 1603년 고경명의 후손과 제자인 박지효등이 임금에게 청하여 ‘포충(褒忠)’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 옛 사당과 동 ·서재는 본래의 위치에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채로 남아있다. 포충사에 소장되어있는 문적(文籍) 4종 9점은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