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공원 현충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광주문화예술인문스토리플랫폼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새 문서: ==Definition== 광주공원 내에 위치한 현충탑은 1950년 6·25전쟁 당시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져 나라를 구한 광주·전남지역의 전몰호국용사 15,8...)
 
1번째 줄: 1번째 줄:
 
==Definition==
 
==Definition==
광주공원 내에 위치한 현충탑은 1950년 6·25전쟁 당시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져 나라를 구한 광주·전남지역의 전몰호국용사 15,867명 ( 군인 10,745명 경찰5,122명 )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1963년 5월 29일 "우리 위한 영의 탑"으로 명명하여 건립 되었다. <br/>
+
광주공원 내에 위치한 현충탑은 1950년 6·25전쟁 당시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져 나라를 구한 광주·전남지역의 전몰호국용사 15,867명 ( 군인 10,745명 경찰5,122명 )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1963년 5월 29일 "우리 위한 영의 탑"으로 명명하여 건립 되었다. <br/>
 
이 탑은 살신성인의 실천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산화하신 호국영령들의 충의와 희생정신을 영원히 추앙하는 뜻에서모든 방향을 수호하는 8방위 형상으로 조성하였다. 그중 6각형 기단과 25m 높이의 탑은 6·25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작품명은 ' 영원의 빛' 이다.
 
이 탑은 살신성인의 실천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산화하신 호국영령들의 충의와 희생정신을 영원히 추앙하는 뜻에서모든 방향을 수호하는 8방위 형상으로 조성하였다. 그중 6각형 기단과 25m 높이의 탑은 6·25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작품명은 ' 영원의 빛' 이다.

2022년 7월 18일 (월) 00:27 판

Definition

광주공원 내에 위치한 현충탑은 1950년 6·25전쟁 당시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져 나라를 구한 광주·전남지역의 전몰호국용사 15,867명 ( 군인 10,745명 경찰5,122명 )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1963년 5월 29일 "우리 위한 영의 탑"으로 명명하여 건립 되었다.
이 탑은 살신성인의 실천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산화하신 호국영령들의 충의와 희생정신을 영원히 추앙하는 뜻에서모든 방향을 수호하는 8방위 형상으로 조성하였다. 그중 6각형 기단과 25m 높이의 탑은 6·25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작품명은 ' 영원의 빛'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