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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사이드(Wiley Hamilton Forsythe)|포사이드(Wiley Hamilton Forsythe)]]는 미국 켄터키주 출신의 의사이자 선교사이다. 1904년에 한국에 파견되어 주로 전라북도 전주에서 병원과 고아원 등을 운영하며 선교 활동을 하였는데, 한 번은 김제에서 강도를 만나 귀가 잘리고 머리를 다치는 등 큰 수난을 겪었다. 결국 치료를 위해 2년간 미국으로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전남 목포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1909년 4월, 광주기독병원장 윌슨으로부터 전보를 받았다. 그는 위독한 동료 [[오기원]](오웬)의 페렴 치료를 위해 즉시 조랑말을 타고 광주로 향했다. 광주로 오던 도중 피고름을 흘리며 죽어가는 여성 나환자를 발견, 구조하게 되고, 이 모습을 보고 감명받은 [[최흥종]]이 봉선동에 있는 본인의 땅을 기증하여, 1912년 광주에 나환자 수용소 및 병원(광주나병원)을 세우게 되었다. 포사이드는 한국에서 풍토병에 걸려 치료차 1911년 미국으로 귀국하였고, 조선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염원하였으나 투병 끝에 1918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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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사이드(Wiley Hamilton Forsythe)|포사이드(Wiley Hamilton Forsythe)]]는 미국 켄터키주 출신의 내과 의사이자 선교사이다. 1904년에 한국에 파견되어 전라북도 전주에서 병원과 고아원 등을 운영하며 선교 활동을 하였는데, 한 번은 김제(또는 군산 인근)에서 강도를 만나 귀가 잘리고 머리를 다치는 등 큰 수난을 겪었다. 결국 치료를 위해 2년간 미국으로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전남 목포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1909년 4월, 광주기독병원장 윌슨으로부터 전보를 받았다. 그는 위독한 동료 [[오기원]](오웬)의 페렴 치료를 위해 즉시 조랑말을 타고 광주로 향했다. 광주로 오던 도중 피고름을 흘리며 죽어가는 여성 나환자를 발견, 구조하게 되고, 이 모습을 보고 감명받은 [[최흥종]]이 봉선동에 있는 본인의 땅을 기증하여, 1912년 광주에 나환자 수용소 및 병원(광주나병원)을 세우게 되었다. 포사이드는 한국에서 풍토병에 걸려 치료차 1911년 미국으로 귀국하였고, 조선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염원하였으나 투병 끝에 1918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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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9일 (수) 14:38 기준 최신판

Definition

포사이드(Wiley Hamilton Forsythe)는 미국 켄터키주 출신의 내과 의사이자 선교사이다. 1904년에 한국에 파견되어 전라북도 전주에서 병원과 고아원 등을 운영하며 선교 활동을 하였는데, 한 번은 김제(또는 군산 인근)에서 강도를 만나 귀가 잘리고 머리를 다치는 등 큰 수난을 겪었다. 결국 치료를 위해 2년간 미국으로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전남 목포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1909년 4월, 광주기독병원장 윌슨으로부터 전보를 받았다. 그는 위독한 동료 오기원(오웬)의 페렴 치료를 위해 즉시 조랑말을 타고 광주로 향했다. 광주로 오던 도중 피고름을 흘리며 죽어가는 여성 나환자를 발견, 구조하게 되고, 이 모습을 보고 감명받은 최흥종이 봉선동에 있는 본인의 땅을 기증하여, 1912년 광주에 나환자 수용소 및 병원(광주나병원)을 세우게 되었다. 포사이드는 한국에서 풍토병에 걸려 치료차 1911년 미국으로 귀국하였고, 조선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염원하였으나 투병 끝에 1918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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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K기독신문 포사이드 https://www.kidok.com/news/photo/202012/209157_58595_155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