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김찰방휴징挽金察訪休徵"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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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재집(遜齋集)』 제1권에 수록되어 있다. | * 『손재집(遜齋集)』 제1권에 수록되어 있다. | ||
* 시의 원문과 번역문은 다음과 같다. 시의 번역은 [[한국학호남진흥원]] 책임연구원 강동석이 맡았다. | * 시의 원문과 번역문은 다음과 같다. 시의 번역은 [[한국학호남진흥원]] 책임연구원 강동석이 맡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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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22일 (월) 13:26 판
기본 정보
| 이름 | 만김찰방휴징 |
|---|---|
| 한자명 | 挽金察訪休徵 |
| 장르 | 시 |
| 작자 | 박광일 |
| 발표지면 | 손재집(遜齋集) |
정의 및 개요
- 만김찰방휴징은 박광일(朴光一, 1655~1723)이 당시 광주 경양역 찰방으로 역임했던 김시서(金時瑞, 1652~1707)의 죽음을 기리며 지은 만사(挽詞)다.
특징
- 만사(挽詞)는 죽은 이를 기리며 지은 시나 글로, 이를 노래인 만가(輓歌)로도 불렀다.
- 만김찰방휴징을 쓴 박광일은 광주 출신으로 본관은 순천이며 자는 자는 사원(士元), 호는 손재(遜齋)이다. 그는 송시열의 문하에서 공부를 했고 1685년에 천거되어 내시교관(內侍敎官), 시강원자의(侍講院咨議) 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여 지리산 문수동에 거처하였다.
- 『손재집(遜齋集)』 제1권에 수록되어 있다.
- 시의 원문과 번역문은 다음과 같다. 시의 번역은 한국학호남진흥원 책임연구원 강동석이 맡았다.
湛老幽棲地 담재 노인께서 은거하신 땅에 賢孫又主人 훌륭한 손자가 또 주인이 되었구려 草堂新面貌 작은 암자는 새로운 모습을 갖췄지만 風月舊精神 바람과 달만큼은 옛 정신을 깃들었지 詩帶靑山色 지은 시에는 푸른 산빛 감돌고 盃含太古春 술잔에는 태고의 봄이 담겨 있지 胡然長寂寞 어찌하여 영면에 들어가셨는지요 淚我百年賓 우리 백년의 나그네 위해 눈물 흘리네
의미관계망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웹리소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박광일 | https://gwangju.grandculture.net/gwangju/toc/GC60001911 |
| 웹리소스 | 한국고전종합DB | 『순재집』제1권 「시」 <김 찰방 휴징 시서 만사〔挽金察訪休徵 時瑞> |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0446A_0020_020_0540 |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만김찰방휴징挽金察訪休徵 | 박광일 | 만김찰방휴징은 광주 출신 문인 박광일이 쓴 시다. | ||
| 만김찰방휴징挽金察訪休徵 | 김시서 | 만김찰방휴징은 김시서와 관련이 있다. | ||
| 김시서 | 경양찰방 | 김시서는 경양찰방을 역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