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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7일 (금) 11:31 기준 최신판
다양한 설화 속 김방을 통해 보는 현재의 광주 》 유능함을 인정받아 관직에 복귀한 김방의 일생
Story
- 광주 출신 김방(金倣, 미상)은 1415년 지 김제군사(知金堤郡事)로 저수지인 벽골제를 수리의 감독을 맡아 겨우 2만명의 인부로 20여일만에 수리하는 큰 업적을 남기었다.[1] 이후 전라도관찰사 권진(權軫)이 작은 죄를 범했다면서 파직 시켰으나, 1418년 벽골제 재수리 논의 시 태종이 김방의 파직 소식을 듣더니 쓸만한 인물이니 후일 서용하라고 하였다.[2] 이후 다시 관직을 받게 되어 전라도 도절제사 진무(都節制使鎭撫) 등을 지냈다.[3]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김방은 지 김제군사, 지 고부군사를 거쳐 전라도 도절제사 진무, 호군에 올랐다.
- 김방은 경양방죽(경양지)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는 일제강점기 시절 작성된 중추원의 『水利에 關한 舊慣』(1913)에 기록되어 있으며[4], 그가 김제에서 저수지 시설을 증축하고 관리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 [5]
- 또한 그는 불심이 깊어 1443년 증심사(證心寺)를 중창하고, 증심사오백전(證心寺五百殿)을 짓고 오백나한(五百羅漢)과 십대 제자상(十大弟子像)을 만들어 봉안하였다. 이외에도 세종 대에 화순 쌍봉사를 중수(삼창)하였다.
- 그의 영정은 광주 증심사, 화순 쌍봉사 등에 봉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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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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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디지털김제문화대전 | 김방 | http://aks.ai/GC02600764 | |
해설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 김방(金倣) | https://people.aks.ac.kr/front/dirSer/ppl/pplView.aks?pplId=PPL_6JOa_A9999_1_0020421 | |
해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경양지 (慶陽池)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675 | |
해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증심사 오백전(證心寺 五百殿)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4044 | |
참고 | 광주광역시 무등산웹생태박물관 | 경양호 | https://geopark.gwangju.go.kr/gallery.do?S=S03&M=020100000000&b_code=0000000011&v_type=SK1&b_list=16&mod=view&list_no=90&cg_code=MUD04 | |
참고 | 광주일보 | 경양방죽 설화는 어떻게 전승돼 왔는가(2019.03.05, 박성천 기자) | 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551711600655602007 |
- type: 해설, 참고, 원문 / 사진, 동영상, 도면, 그림, 지도, 3D_지도, 3D_모델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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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직할시고산연구회:1990:광주의전설:광주직할시 | 단행본 | 광주직할시, 고산연구회, 『광주의 전설』, 광주직할시, 1990, pp50~52. | 국립중앙도서관 | https://www.nl.go.kr/NL/contents/search.do?#viewKey=203251&viewType=AH1 |
ISBN:9788998057190 | 단행본 | 김정호, 『광주산책(하)』, 광주광역시 광주문화재단, 2015 | 광주문화재단 | https://www.gjcf.or.kr/cf/Board/7625/detailView.do |
KISS:3610880 | 논문 | 김희태, 「조선시대 기록을 통해 본 광주 경양지(景陽池)」, 『향토문화』 27, 향토문화개발협의회, 2007, pp41-64. | KISS | https://kiss.kstudy.com/Detail/Ar?key=3610880 |
KCI:ART002422017 | 논문 | 이옥희, 「경양방죽 설화의 전승 담론과 서사 전략」, 『호남학』 64,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2018, pp121-149. | KCI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422017 |
KCI:ART002358086 | 논문 | 변동명, 「조선시기 광주 경양방죽의 수축과 운영」, 『국학연구론총』 21, 택민국학연구원, 2018, pp307-336. | KCI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358086 |
sillok:kca_11801013_004 | 자료집 | 『태종실록』, 태종 18년 1월 13일: 판광주목사 우희열이 제언의 일을 상서하다 | 조선왕조실록 | https://sillok.history.go.kr/id/kca_11801013_004 |
sillok:kda_10210016_004 | 자료집 | 『세종실록』, 세종 2년 10월 16일: 사간원이 올린 김방·박초의 치죄에 관한 상소문 | 조선왕조실록 | https://sillok.history.go.kr/id/kda_10210016_004 |
sillok:kda_10301016_008 | 자료집 | 『세종실록』, 세종 3년 1월 16일: 전라도 관찰사 장윤화와 수군 도절제사 박초가 벽골제와 눌제의 수축에 대해 아뢰다 | 조선왕조실록 | https://sillok.history.go.kr/id/kda_10301016_008 |
- id: 인용전거
- type: 단행본, 논문, 도록, 자료집
- online resource: KCI, RISS, DBpia, 네이버 학술정보 .....
Notes
- ↑ 『세종실록』, 세종 3년 1월 16일: 전라도 관찰사 장윤화와 수군 도절제사 박초가 벽골제와 눌제의 수축에 대해 아뢰다
- ↑ 『태종실록』, 태종 18년 1월 13일: 판광주목사 우희열이 제언의 일을 상서하다
- ↑ 『세종실록』, 세종 2년 10월 16일: 사간원이 올린 김방·박초의 치죄에 관한 상소문
- ↑ 제2장 ‘수리시설의 종류 및 성질’, 제1 ‘관개용 시설’, 甲 ‘堤堰’의 ‘民有堤堰’ 중 ‘共有堤堰’에 김방이 경양방죽을 수축했다는 설이 수록되어 있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일제강점기)
- ↑ 그러나 이 경양방죽은 1902년 6월 9일자 『황성신문』의 기사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 고대 축조설도 있다. 또한 1530년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 (新增東國輿地勝覽)』에 경양방죽 관련 언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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