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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지도==
==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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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2024-C093|광주에 스며든 개인의 이야기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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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C210|광주의 선비 고운, 생의 끝에 남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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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C304|충장로의 단발머리 여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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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C307|친구따라 광주에 온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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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2024-C106|도전의 불씨를 나누고 무등에 깃든 산사람, 김홍빈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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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4일 (일) 16:29 기준 최신판

충장로의 단발머리 여의사

이야기

현덕신(玄德信, 1896~1963)은 1921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당시 최고의 여성 전문 병원이던 동대문부인병원에서 소아과와 산부인과 의사로 재직했다. 이후 남편 최원순(崔元淳)과 함께 광주로 내려와 충장로 4가의 옛 화니백화점 인근에 현덕신의원을 개업하였다. 이곳은 광주 최초의 여성 전문 병원으로 여성과 아동을 진료했으며, 현준호 등 지역 유지들의 지원을 받았다.

그는 광주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단발머리 여의사로도 유명했다. 이 단발에는 잊지 못할 사연이 있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어느 새벽, 한 청년이 다급히 찾아와 위급한 산모를 살려 달라며 왕진을 청했다. 가방을 챙기던 그는 잠시 긴 머리를 고쳐 묶고 나섰지만,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산모와 아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날 이후 그는 머리 손질에 허비한 그 짧은 시간을 마음에 새기며 단발로 머리를 잘랐고, 평생 그 모습을 지켰다.

이 밖에도 현덕신광주 YWCA 활동에 참여하여 여성과 아동의 권익 향상과 지역 여성운동에 힘을 쏟았다.

스토리 그래프



이야기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