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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E2024-C012|홍성담과 | + | ** [[E2024-C083|공동의 손으로 그린 기억: 민중미술과 5·18 벽화]] |
| + | ** [[E2024-C010|붓을 든 청춘들: 대학 미술패가 그린 시대]] | ||
| + | ** [[E2024-C141|간판을 넘어선 박태규의 붓, 삶과 숲을 걷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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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2024-C050|대학과 청년, 실험의 출발점]] | * [[S2024-C050|대학과 청년, 실험의 출발점]] | ||
2026년 1월 9일 (금) 15:29 기준 최신판
붓을 든 청춘들: 대학 미술패, 예술로 시대를 살다
이야기
1980년대 광주, 민주화의 열망이 도시를 관통하던 그 시절, 붓을 든 청춘들이 있었다. 그들은 교정에서 시작된 예술적 울림을 사회로 확장시켜 나갔다. 대중미술운동의 정신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그 흐름은 곧 교육 공간 속 실천으로 이어졌다. 이를 대학미술운동이라 부른다.
조선대학교에서는 미술패 개땅쇠, 땅끝, 토말, 조선미술터가 결성되었고, 전남대학교에는 미술패 마당, 불나비, 신바람, 우리미술연구회, 창이 활동을 시작했다. 호남대학교에서는 미술패 매가, 광주교육대학교에서는 미술패 솟터가 붓을 들었다.
이들 대학 미술패는 단지 각자의 학교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들은 전남광주지역미술패연합이라는 이름 아래 뭉쳐 연대했고, 함께 시대의 고통과 희망을 그려냈다. 그들의 활동은 강의실을 넘어 광장과 골목, 노동 현장과 문화제의 벽화 속으로 퍼져나갔다.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예술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고자 했던 청춘들. 그들이 그려낸 그림은 단순한 미술 작품이 아니라, 시대의 초상이며 연대의 기록이었다. 그 시절, 대학 미술패의 붓끝은 곧 저항이자 희망이었다. 그들이 남긴 흔적은 오늘날에도 광주의 벽을 타고 흐르고 있다.
스토리 그래프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 | description/caption | URL |
|---|---|---|---|---|
| 해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광주전남지역 대학미술패연합 | http://aks.ai/GC60003444 | |
| 해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대중미술운동 | http://aks.ai/GC60003476 |
이야기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