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024-C281"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새 문서: __NOTOC__ = '''광주읍성, 광주 도시의 시원''' = == 이야기 == 광주읍성은 조선시대 광주의 행정과 방어의 중심이었던 성곽으로, [...) |
(→이야기) |
||
| 4번째 줄: | 4번째 줄: | ||
== 이야기 == | == 이야기 == | ||
| − | [[광주읍성|광주읍성]]은 조선시대 광주의 행정과 방어의 중심이었던 성곽으로, [[광산관|광산관]], [[희경루|희경루]] 등 주요 시설과 [[광주읍성_공북문|공북문]], [[광주읍성_광리문|광리문]], [[광주읍성_서원문|서원문]], [[광주읍성_진남문|진남문]] 네 개의 대문을 갖추고 있었다. 성 주변에는 [[광주_서원문_밖_석장승|서원문 밖 석장승]]과 [[석옹중|북문 밖 석옹중]] 같은 수호 석물이 있었으며, [[ | + | [[광주읍성|광주읍성]]은 조선시대 광주의 행정과 방어의 중심이었던 성곽으로, [[광산관|광산관]], [[희경루|희경루]] 등 주요 시설과 [[광주읍성_공북문|공북문]], [[광주읍성_광리문|광리문]], [[광주읍성_서원문|서원문]], [[광주읍성_진남문|진남문]] 네 개의 대문을 갖추고 있었다. 성 주변에는 [[광주_서원문_밖_석장승|서원문 밖 석장승]]과 [[석옹중|북문 밖 석옹중]] 같은 수호 석물이 있었으며, [[천년완골석비|진남비]]와 같은 기념비도 존재했다. 일제강점기인 1909년부터 1918년 사이, ‘남한폭도대토벌작전’ 이후 성곽이 철거되고 도로와 신시가지가 조성되면서 현재는 [[광주읍성유허|광주읍성유허]]로만 남아 있다. |
== 스토리 그래프 == | == 스토리 그래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