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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황순원 | + | * [[황순원|황순원(黃順元, 1915~2000)]]: 대표작 「[[소설_소나기|소나기]]」를 쓴 대한민국의 남성 시인, 소설가. |
* 1913년 평안남도 출생이다. 평안남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 대학교에서 영영문학사를 취득했다. | * 1913년 평안남도 출생이다. 평안남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 대학교에서 영영문학사를 취득했다. | ||
− | * 1931년 《동광》에 「나의 꿈」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일본 유학 시절 극예술 연구단체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립해 이 단체 이름으로 27편의 시가 실린 첫 시집 『방가(放歌)』를 간행했다. 1935년 두 번째 시집 『골동품』을 발간 후, 시가 아닌 소설에 몰두했다. | + | * 1931년 《동광》에 「나의 꿈」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일본 유학 시절 극예술 연구단체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립해 이 단체 이름으로 27편의 시가 실린 첫 시집 『방가(放歌)』를 간행했다. |
− | * 1940년에 『황순원 단편집』(이후 제목을 『늪』으로 고쳤다)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42년 이후 한글 말살정책이 시행되자 고향인 빙장리에 숨어 여러 단편을 썼다. 광복 후 평양으로 돌아가지만, 지주 계급으로 몰리는 등 신변에 위협을 느껴 이듬해 월남했다. | + | * 1935년 두 번째 시집 『골동품』을 발간 후, 시가 아닌 소설에 몰두했다. |
+ | * 1940년에 『황순원 단편집』(이후 제목을 『늪』으로 고쳤다)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 ||
+ | * 1942년 이후 한글 말살정책이 시행되자 고향인 빙장리에 숨어 여러 단편을 썼다. 광복 후 평양으로 돌아가지만, 지주 계급으로 몰리는 등 신변에 위협을 느껴 이듬해 월남했다. | ||
* 서울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하며 꾸준히 단편을 발표했다. 1953년 장편 소설 『카인의 후예』를 발간했다. 1957년부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 * 서울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하며 꾸준히 단편을 발표했다. 1953년 장편 소설 『카인의 후예』를 발간했다. 1957년부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 ||
− | * 왕성한 창작 활동 후 간간이 | + | * 왕성한 창작 활동 후 간간이 시를 발표하며 말년을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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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4일 (월) 14:38 기준 최신판
Definition
- 황순원(黃順元, 1915~2000): 대표작 「소나기」를 쓴 대한민국의 남성 시인, 소설가.
- 1913년 평안남도 출생이다. 평안남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 대학교에서 영영문학사를 취득했다.
- 1931년 《동광》에 「나의 꿈」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일본 유학 시절 극예술 연구단체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립해 이 단체 이름으로 27편의 시가 실린 첫 시집 『방가(放歌)』를 간행했다.
- 1935년 두 번째 시집 『골동품』을 발간 후, 시가 아닌 소설에 몰두했다.
- 1940년에 『황순원 단편집』(이후 제목을 『늪』으로 고쳤다)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 1942년 이후 한글 말살정책이 시행되자 고향인 빙장리에 숨어 여러 단편을 썼다. 광복 후 평양으로 돌아가지만, 지주 계급으로 몰리는 등 신변에 위협을 느껴 이듬해 월남했다.
- 서울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하며 꾸준히 단편을 발표했다. 1953년 장편 소설 『카인의 후예』를 발간했다. 1957년부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 왕성한 창작 활동 후 간간이 시를 발표하며 말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