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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여순사건(Yeosu-Suncheon Rebellion, 麗順事件)은 1948년 10월 19일 전라남도 여수·순천 지역에서 일어난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의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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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Yeosu-Suncheon Rebellion, 麗順事件)1948년 10월 19일 전라남도 여수·순천 지역에서 일어난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의 반란과 여기에 호응한 좌익계열 시민들의 봉기가 유혈 진압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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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finition ==
*‘여수·순천 10·19사건’이라고도 한다. 여수 순천 지역에서는 ‘여순항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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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Yeosu-Suncheon Rebellion, 麗順事件, 1948): 1948년 10월 19일 전라남도 여수.순천 지역에서 일어난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의 반란과 여기에 호응한 좌익계열 시민들의 봉기가 유혈 진압된 사건.
*1948년 10월 19일부터 27일까지 이어졌던 여순사건은 토벌군과 봉기군의 전투 과정에서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를 남겼다. 피해에 관해서는 다양한 통계가 확인되며 대략 2,000~5,000여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재산 피해는 약 100억 원, 가옥 소실은 2천 호가량으로 집계되었다. 그러나 여수 순천 시민단체 등에서는 민간인 피해자가 1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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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순천 10.19사건’이라고도 한다. 여수.순천 지역에서는 ‘여순항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여순사건은 정부 차원에서 정치적 위기감을 갖게 했고, 결과적으로는 이승만 대통령의 철권통치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회에서도 위기감을 느껴 ‘[[국가보안법]]’을 1948년 12월 1일에 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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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0월 19일부터 27일까지 이어졌던 [[여순사건]]은 토벌군과 봉기군의 전투 과정에서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남겼다. 피해에 관해서는 다양한 통계가 확인되며 대략 2,000~5,000여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재산 피해는 약 100억 원, 가옥 소실은 2천 호가량으로 집계되었다. 그러나 여수.순천 시민단체 등에서는 민간인 피해자가 1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2021년 6월 29일, 사건 발발 72년 만에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됨으로써 여순사건도 제주 [[4.3사건]]과 같이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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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은 정부 차원에서 정치적 위기감을 갖게 했고, 결과적으로는 [[이승만]] 대통령의 철권통치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회에서도 위기감을 느껴 ‘[[국가보안법]]’을 1948년 12월 1일에 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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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29일, 사건 발발 72년 만에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됨으로써 [[여순사건]]도 [[제주_4.3_사건|제주 4.3 사건]]과 같이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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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트라우마센터]]는 [[여순사건]] 관련자와 가족을 치유하였다.
 
*참조: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72071&cid=46626&categoryId=46626
 
*참조: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72071&cid=46626&categoryId=46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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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문맥항목/2023]] [[분류:박상수]] [[분류:철학/2023]]
 
[[분류:문맥항목/2023]] [[분류:박상수]] [[분류:철학/2023]]

2024년 2월 19일 (월) 21:51 기준 최신판

Definition

  • 여순사건(Yeosu-Suncheon Rebellion, 麗順事件, 1948): 1948년 10월 19일 전라남도 여수.순천 지역에서 일어난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의 반란과 여기에 호응한 좌익계열 시민들의 봉기가 유혈 진압된 사건.
  • ‘여수.순천 10.19사건’이라고도 한다. 여수.순천 지역에서는 ‘여순항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 1948년 10월 19일부터 27일까지 이어졌던 여순사건은 토벌군과 봉기군의 전투 과정에서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남겼다. 피해에 관해서는 다양한 통계가 확인되며 대략 2,000~5,000여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재산 피해는 약 100억 원, 가옥 소실은 2천 호가량으로 집계되었다. 그러나 여수.순천 시민단체 등에서는 민간인 피해자가 1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 여순사건은 정부 차원에서 정치적 위기감을 갖게 했고, 결과적으로는 이승만 대통령의 철권통치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회에서도 위기감을 느껴 ‘국가보안법’을 1948년 12월 1일에 제정하였다.
  • 2021년 6월 29일, 사건 발발 72년 만에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됨으로써 여순사건제주 4.3 사건과 같이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과 명예 회복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 광주트라우마센터여순사건 관련자와 가족을 치유하였다.
  • 참조: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72071&cid=46626&categoryId=46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