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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S2024-C016|관아·누각·풍류 공간의 도시성]] | ||
| + | ** [[E2024-C281|광주읍성의 옛 모습, 광주읍성의 4대문]] | ||
| + | ** [[E2024-C282|광주읍성의 옛 모습, 동헌과 서헌]] | ||
| + | ** [[E2024-C283|광주읍성의 옛 모습, 읍성의 누각]] | ||
| + | ** [[E2024-C284|광주읍성의 옛 모습, 공북문과 절양루]] | ||
== 주석 == | == 주석 == | ||
2025년 12월 22일 (월) 22:35 기준 최신판
광주읍성의 옛 모습, 동헌과 서헌
이야기
광주읍성 안에는 동헌(하모당)과 수령의 가족이 생활한 서헌(內衙)이 있었다. 동헌은 ‘덕정(德政)을 베푸는 관아’라는 의미의 하모당이라 불렸으며, 이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이 다수 전해진다. 신숙주(申叔舟)는 하모당을 주제로 한 「차광주동헌운次光州東軒韻」을 남겼고, 홍명원(洪命元)은 「하모당기」에서 동헌의 모습을 기록하였다. 고성후(高成厚)는 「동헌주석」에서 동헌에서 나눈 우정을 시로 표현하였다. 서헌은 관가의 안채로, 신숙주의 「제광주서헌」이 현존하는 유일한 기록이다. 이처럼 동헌과 서헌은 광주의 행정과 생활의 중심이었으며, 문인들의 시문 속에서 그 당시의 풍경과 교유를 전해준다.
스토리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