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군 강등 사건
기본 정보
| 이름 | 무진군 강등 사건 |
|---|---|
| 이칭 | 광주목 무진군 강등 사건 |
| 발생시기(기간) | 1430년 |
| 발생지역 | 조선 광주 지역(현 광주광역시) |
| 주요 인물/단체/기관 | 신보안(광주목사), 노흥준(읍민) 등 |
정의 및 개요
- 광주가 세종대에 발생한 무진군 강등 사건은 1430(세종 12)년에 발생한 사건 때문이었다.
특징
- 광주목사 신보안이 광주 사람 노흥준의 기생 첩을 차지하려고 하였고 이 사실을 안 노흥준이 신보안을 발로 걷어 차버렸다.
- 이 구타사건은 전라감영의 조사를 거쳐 중앙에 보고되어 이에 따라 노흥준은 곤장을 맞고 변방으로 유배를 갔고, 광주목은 무진군으로 강등되고 말았다.
- 광주는 고려 공민왕 이래 牧使 고을이었는데, 이 사건으로 읍격이 郡으로 강등되고 말았다.[1]
의미관계망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웹리소스 | 광주역사문화자원스토리텔링 | 광주목 강등과 노흥준 光州牧 降等과 盧興俊 | http://gjstory.or.kr/sub.html?pid=48&formtype=view&code=1172 |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무진군 강등 사건 | 광주목 복호 | 선행한 사건이다. | ||
| 무진군 | 무진군 강등 사건 | 이 사건으로 인해 강등되어 불린 광주 지명이다. |
- ↑ 김덕진, 「15세기 光州牧 邑號陞降과 喜慶樓」, 『조선시대사학보』 no.91, 조선시대사학회, 2019, 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