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목 복호
기본 정보
| 이름 | 광주목 복호 |
|---|---|
| 한자명 | 光州牧 復護 |
| 이칭 | 광주목 재승격 사건 |
| 발생시기(기간) | 1451년 |
| 발생지역 | 광주 |
| 주요 인물/단체/기관 | 필문 이선제(筆門 李善濟), 광주 원로 등 |
정의 및 개요
- 무진군 강등 사건이 일어난 후 20년이 지난 때 1451년 필문 이선제가 1451년 광주의 원로들과 함께 임금에게 사건과 목사 승격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하는 등 간곡한 상소를 올렸고 이를 받아들인 문종에 의해 다시 광주목으로 다시 승격하게 된다.
특징
- 1451년 신숙주와 1536년 심언경은 각각의 ‘희경루기’에서 “고을의 원로들이 모두 모여 경축했다(父老咸集致慶)”, “고을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고 서로 경축했다(邑人咸喜相慶)”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1]
의미관계망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웹리소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무진군 강등 사건 | http://aks.ai/GC60000757 |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희경루 | 광주목 복호 | 축하하여 이름을 붙였다. |
- ↑ 「희경루 喜慶樓」,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홈페이지』,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http://www.gjsgcc.or.kr/ko/26/view?SEQ=2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