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희

dh_edu
이동: 둘러보기, 검색

1930~40년대 일제의 민족말살통치 기간에 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이병희.jpg

생애

1918년 서울특별시에서 출생하였다. 한양의 양반가에서 출생하였는데, 아버지 이경식은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한 독립운동가였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딸 이병희 또한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큰아버지 이원식 역시 안동에서 사람들을 규합해 독립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였다. 이병희는 경성여자상업학교에 다니다 중퇴한 후 일본인이 경영하던 종연방적주식회사에 위장으로 취업을 하게 된다. 1936년 18세의 나이로 동료 노동자 등 여성들을 규합하여 만세운동과 임금인상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2년 4개월여간 옥고를 치르었고, 이후에도 여러 곳에 다시 위장 취업하고 만세운동 하는 활동을 반복하였다. 이후 1940년 베이징으로 망명하여 의열단에 가입한다. 의열단에서의 그녀의 임무는 단원들 간의 연락책과 군자금 모집이었다.

이육사와의 관계

시인 이육사와는 10촌 친척 관계이다. 의열단에 가입하게 된 것도 이육사의 영향이었다. 1944년 이병희 지사가 감옥에서 다시 출소를 한 지 닷새 후 친척 이육사가 사망하였다는 연락을 받고 이육사의 시신과 유품을 수습하였다. 유품 중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인 광야청포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병희 지사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육사 시인의 이러한 작품들을 아예 접하지 못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