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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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otters290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12월 7일 (수) 22:47 판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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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이다. 1919년 10월 10일 현재의 서울시 종로구에서 태어났다. 자택 화제로 1998년 2월 5일 사망하였다.

한국 영화의 표현주의, 작가주의의 시초이며, 안성기, 윤여정 등 여러 신인 배우들을 발굴했다. 한국 영화 감독 중에서 가장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감독이기도 하다

감독

계기

교토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광복 직후 서울로 돌아와 현재의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들어가 1950년 졸업했다. 연극부에서 연출을 맡던 중 평양에서 헨리 입센의 <유령>을 공연했다. 당시 기성 연극을 뛰어넘는 수준이라는 극찬을 받았으며, 심지어는 평양의 소련군정에서 영화 및 연극 관계자에게 모스크바 유학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 주한미국공보원에서 <나는 트럭이다>, <수병의 일기> 등 문화 영화, 홍보 영화를 만들었다. 미국 공보원의 지원으로 첫 장편 극영화인 <죽엄의 상자>를 1955년에 완성한다. 이후 다양한 상업 영화를 만들었다.

현재 그의 초창기 영화는 필름 소실이나 훼손으로 인해 많은 부분이 사라져 있다.

세계관

앞서 언급했듯 그의 세계관은 한국 영화의 그 어떤 감독과 비교해보아도 가장 독특하고 독창적이다.

"인간의 본능을 해부하면 검은 피가 난다. 그것이 욕망이다."라는 그의 말은 그의 세계관을 가장 단편적으로 나타낸다. 그는 1960년대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되었던 계급적 부조리, 성적 욕망 표현, 불륜 등의 소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남성미를 강조하던 당시의 시대상과는 정반대로 무기력하고 경제력이 없는 남편이 부인에게 의지하는 소재가 많이 등장한다. 그의 영화 속 여성은 강인하고 개인적 욕망에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그는 3편에 걸쳐 하녀 시리즈를 만들었는데, 한 영화의 후속작을 만들거나 같은 주제를 가지는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하녀>라는 영화를 여러 번 리메이크하여 시리즈를 완성하였다. 본인이 밝힌 바로는 하녀 시리즈에 애착이 생겨 시대의 변화를 반복해 여러 번 리메이크 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 사회는 10년마다 시대상이 크게 바뀌어 영화를 10년만에 리메이크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크게 놀랍지 않을 수 있다. 그는 당시의 시대상, 트렌드를 자신의 영화의 요소로서 삽입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단순히 시대를 반영을 하는 것을 넘어 본인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영화를 설명할 때 '기괴한'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다양하고 오컬트적인 요소가 들어있는 연출을 많이 하였다. 그를 알린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가 <하녀>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남자를 붙잡은 여자의 머리가 그가 계단을 내려오면서 층계 하나하나에 부딪치는 장면이다. 이 장면만 하더라도 충분히 기괴한데, 그의 영화 <충녀>가 칸 영화제에 상영되었을 때는 당시 영화를 보던 이들마저도 경악을 하게 한 장면이 많이 나왔다.

김기영 감독의 이러한 세계관은 이후 박찬욱, 봉준호의 세계관에도 영향을 주어 한국 영화만의 독특한 감각을 생성되는 영감을 주었다.

박찬욱과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