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지구전투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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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지구전투사령부

시흥지구전투사령부.jpg

소속 대한민국 육군
창설일 1950년 6월 28일
해체일 1950년 7월 5일
상급부대 대한민국 육군본부
역할 한강 이남 방어
사령관 중장 김홍일(육사 7기)

개요

시흥지구전투사령부는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수도 서울과 그 주변 지역의 방어를 목적으로 설치된 대한민국 육군의 임시 전투 지휘 기구이다. 전쟁 초기 국군의 지휘 체계가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도권 방어를 통합 지휘하기 위해 편성되었으며, 서울 방어 및 한강 방어선 전투와 관련된 작전에 관여하였다.

배경

북한의 남침 직후 대한민국 육군은 급속한 전황 악화로 인해 수도권 일대에서 지휘 체계가 붕괴되고 부대 단위의 무질서한 퇴각이 발생한 상태였다. 서울 및 경기 지역에 배치된 부대들은 통합 지휘를 받지 못한 채 분산되어 있었으며, 이를 수습하기 위한 임시 전투 지휘 기구로 시흥지구전투사령부가 설치되었다. 김홍일은 시흥지구전투사령부 지휘관으로서 퇴각하던 국군 병력을 수습하여 경기 남부 지역에 방어선을 재편성하였고, 이를 통해 한강 이남 지역에서의 방어 작전을 지휘하였다. 참모장은 대령 김종갑(군사영어학교 1기)가 맡았다.

편제

부대는 김포지구, 강남지구, 노량진지구, 영등포지구, 이천-용인지구로 나뉘어 편성되었다. 김포경비사령관 대령 계인주는 지역 방어에 실패한 뒤 부산으로 도주하여 사형 선고를 받기도 했다. 김포지구 예하에는 탈북한 인민군으로 구성된 호국대대가 배치되어 있기도 했다. 북한군의 전면 전차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독립기갑연대가 편성되기도 했다. 대다수의 사단 및 연대는 한강철교 폭파에 동원되었던 공병대, 한강 이북에서 후퇴한 보병대, 개성에서 해상으로 후퇴한 대대, 후방에서 소집되어 도착한 신병부대가 섞인 혼성사단/혼성연대로 급히 편성되었다.

의의

시흥지구전투사령부는 임무 수행 이후 해체되었으며, 그 예하 부대와 지휘 체계는 후속 야전 지휘부와 작전 단위로 흡수·전환되었다. 이 과정에서 경기 남부 지역에서 재편성된 병력과 부대는 이후 한강 이남 방어 및 남부 전선으로 이동하여 작전에 투입되었다. 시흥지구전투사령부가 수행한 병력 수습과 방어선 유지 과정은 전쟁 초기 국군의 전면적인 붕괴를 지연시키는 효과를 가져왔으며, 이는 이후 국군이 낙동강 전선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재구축하는 데 간접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