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열단(義烈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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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의열단(義烈團)은 1919년 11월 10일, 만주 지린성(길림성)에서 조직된 항일 무장 독립운동 단체이다. 약산 김원봉을 단장으로 하여 윤세주, 이성우 등 13명의 청년 지사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되었다. 3.1 운동 이후 비폭력 외교 독립론의 한계를 절감하고, 일제 수뇌부 암살과 식민 통치 기관 파괴라는 직접적이고 과격한 투쟁 노선을 지향했다. 단체명은 "천하의 정의(正義)로운 일을 맹렬(猛烈)히 실행한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1920년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무장 투쟁 단체로 평가받는다.
’‘’‘’개요‘’‘’‘
| 명칭 | 의열단 (Righteous Brotherhood) | | 설립일 | 1919년 11월 10일 | | 설립 장소 | 중국 만주 지린성(길림성) | | 주요 인물 | 김원봉(단장), 윤세주, 신채호, 김상옥, 나석주 등 | | 활동 시기 | 1919년 ~ 1935년 (이후 민족혁명당으로 개편) | | 이념 | 아나키즘, 민족주의, 절대 독립 | | 행동 강령 | 조선혁명선언 (신채호 작성) |
’‘’‘’결성 배경 및 목적‘’‘’‘
1919년 3.1 운동이 일제의 무력 탄압으로 좌절된 후, 만주와 상하이 등지의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는 평화적 시위나 외교적 호소만으로는 독립을 쟁취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보다 직접적이고 강력한 무력 투쟁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당시 22세였던 김원봉은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동지들을 규합하여, 일제의 무력에 대항하여 암살과 파괴 활동을 전개하는 비밀결사 조직인 의열단을 창단하였다. 이들은 '공약 10조'를 결의하고, 언제 어디서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하였다.
’‘’‘’행동 강령과 지침‘’‘’‘
의열단은 구체적인 타격 대상과 행동 지침을 정해두었는데, 이는 '7가살(七可殺)'과 '5파괴(五破壞)'로 요약된다. 3.1. 7가살 (죽여야 할 7가지 대상)
* 조선총독 및 고관 * 군부 수뇌 * 대만총독 * 매국노 (친일파) * 밀정 (친일 스파이) * 반민족적 토호열신 (악덕 지주 등) * 기타 반혁명적 수괴
3.2. 5파괴 (파괴해야 할 5가지 대상)
* 조선총독부 * 동양척식주식회사 * 매일신보사 (총독부 기관지) * 각 경찰서 * 기타 왜적의 중요 기관
3.3. 조선혁명선언 (1923) 초기 의열단은 테러리즘에 가까운 개별 투쟁 중심이었으나, 투쟁의 정당성과 이념적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 단재 신채호에게 선언문 작성을 의뢰했다. 1923년 발표된 <조선혁명선언>은 외교론과 준비론을 비판하고, 민중의 직접 혁명만이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천명했다. 이는 의열단의 활동 지침이자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문건으로 평가받는다.
’‘’‘’주요 활동 (연혁)‘’‘’‘
의열단은 1920년대 전반에 걸쳐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굵직한 의거를 잇달아 거행했다.
* 1920년 9월 (부산 경찰서 투탄 의거): 박재혁 의사가 부산 경찰서장 하시모토에게 폭탄을 투척하여 중상을 입히고 순국함. * 1920년 12월 (밀양 경찰서 투탄 의거): 최수봉 의사가 밀양 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함. * 1921년 9월 (조선총독부 투탄 의거): 김익상 의사가 전기 수리공으로 위장하여 조선총독부 청사에 침입, 비서과와 회계과에 폭탄을 던짐. * 1922년 3월 (다나카 대장 저격 의거): 오성륜, 김익상, 이종암이 상하이 황포탄 부두에서 일본 육군 대장 다나카 기이치를 저격하려 시도함. * 1923년 1월 (종로 경찰서 투탄 의거): 김상옥 의사가 일제 경찰의 본거지인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함. 이후 1,000여 명의 일본 군경과 홀로 대치하며 시가전을 벌이다 자결함 (1대 1000의 전설). * 1924년 1월 (이중교 투탄 의거): 김지섭 의사가 일본 도쿄 황궁 입구인 이중교(니주바시)에 폭탄을 투척함. * 1926년 12월 (동양척식주식회사 투탄 의거): 나석주 의사가 식민지 경제 수탈의 본거지인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본 경찰과 교전 후 자결함.
’‘’‘’노선 변경 및 해소‘’‘’‘
1920년대 중반 이후, 김원봉과 지도부는 개별적인 암살과 파괴 활동만으로는 조직적인 일제 군사력에 대항하여 독립을 달성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인식했다. 이에 따라 대중적이고 조직적인 무장 투쟁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게 된다.
* 군사 교육: 단원들은 황포군관학교 등에 입교하여 정식 군사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 정당 결성: 1932년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설립하여 정치 요원을 양성하였으며, 1935년에는 다른 독립운동 단체들과 통합하여 조선민족혁명당을 창당하였다. * 군대 창설: 이후 의열단 출신들은 조선의용대 창설의 주역이 되어 중국 대륙에서 항일 전쟁을 수행했다.
’‘’‘’평가 및 의의‘’‘’‘
* 항일 의지의 고취: 일제 강점기 중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목숨을 건 과감한 투쟁으로 우리 민족에게 독립의 희망을 잃지 않게 하였다. * 일제에 대한 공포: 일제 수뇌부와 친일파들에게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심을 심어주어 식민 통치를 위축시켰다. * 독립운동의 다양화: 외교론이나 실력 양성론에 머물던 독립운동의 노선을 '무장 투쟁'과 '민중 혁명'으로 확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