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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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11월 27일 (목) 17:2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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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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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조소앙
출생 1887.04.10.
출생지 경기도 파주
사망 1958.09.10.

개요

조소앙(1887~1958)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사상가로, 삼균주의(정치·경제·교육의 균등)를 제창한 인물이다.

생애 및 활동

유년기~청년기 (1887~1912)

본관은 함안, 본명은 조용은(조경중), 호가 소앙이다. 경기도 파주에서 출생하여 성균관을 수료한 뒤 일본에서 유학하며 메이지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한학을 수학했고, 1902년 성균관에 입학하여 신채호 등과 함께 매국적 음모를 규탄하는 성토문을 작성하기도 했다. 일본 유학 시절에는 공수학회, 대한흥학회 등 여러 유학생 단체를 조직하며 민족운동가로 성장하였다. 1912년 귀국 후 경신학교·양정의숙·대동법률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상하이 망명·혁명운동기 (1913~1919)

1913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동제사 활동을 통해 항일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1917년 〈대동단결선언〉을 기초해 임시정부 수립의 필요성을 천명했고, 1919년 만주 길림에서 〈대한독립선언서〉를 기초해 국내외에 배포하였다. 같은 해 4월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대한민국임시헌장」과 「임시의정원법」을 기초하는 등 임시정부의 기틀을 마련했다.

임시정부 수립 및 외교활동기 (1919~1930)

그는 임시정부 외무총장·국무위원 등을 역임하며 파리강화회의, 국제사회당대회 등 국제무대에서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는 외교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김규식과 함께 유럽 각지를 순방하며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고, 영국·프랑스·스위스 등을 오가며 한국 문제를 세계에 알렸다. 베르그송, 타고르 등 세계 지식인들과도 교류하였다. 1930년 김구·이동녕·안창호 등과 함께 한국독립당을 창당하고,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강조하는 삼균주의를 독립운동의 이념으로 정립하였다. 삼균주의는 균권·균부·균지(균학)를 통해 국민 생활의 균등을 달성하고, 나아가 민족과 국가 간의 평등,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민족국가 건설론이었다. 이는 1941년 채택된 「대한민국건국강령」의 기본 이념이 되었다.

광복 이후 활동기 (1945~1950)

광복 후에는 임시정부 요인으로서 환국하여 「임시정부 당면정책」을 작성하고,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주장했다. 그는 신탁통치 반대운동과 비상국민회의 활동을 주도하며 통일 독립국가 수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1948년 김구·김규식과 함께 남북협상에 참석했으나, 이후 한국독립당과 정치노선이 달라져 사회당을 창당하였다.

국회 활동·납북·사망 (1950~1958)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성북구에 출마하여 전국 최다득표로 당선되었으나, 한국전쟁 중 납북되었고 1958년 평양에서 사망했다. 사후 대한민국에서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989), 북한에서는 조국통일상(1990)을 각각 추서받았다.

조소앙 연표

쑨원과의 연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