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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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건물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6월 11일 (수) 10:5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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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개요

오페라의유령 개요.png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바탕으로 제작된 뮤지컬이다.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뮤지컬계의 전설인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업계 최고의 프로듀서 캐머런 매킨토시가 뮤지컬로 만든, 그야말로 걸작이다. 흔히 레미제라블, 캣츠, 미스 사이공과 함께 세계 4대 뮤지컬이라 불리나 이는 한국에 잘못 알려진 정보로 '캐머런 매킨토시의 대표작' 4개 중 하나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브로드웨이 역사상 최장 기간 공연했던 뮤지컬이며, 2020년 기준 역사상 가장 흥행한 뮤지컬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코로나 팬데믹 등의 여파로 수익성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결국 2023년 4월 16일을 끝으로 브로드웨이 상연이 끝났다. 이로써 브로드웨이 역사상 최장 기간 공연중인 뮤지컬이라는 기네스 세계 기록은 35년을 끝으로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하지만 런던 웨스트엔드에서는 코비드 시기에 중단 되었다가 2021년부터 다시 공연이 지속되고 있다.

줄거리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오페라의 유령이 아름다운 프리마돈나 크리스틴을 짝사랑하는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이다. 파리 오페라극장을 무대로, 천사의 목소리를 타고 났지만 흉측하고 기형적인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오페라의 유령이 아름답고 젊은 프리마돈나인 크리스틴을 짝사랑하는 이야기는 1861년 파리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인 '오페라의 유령'은 언제나 오페라극장의 5번 박스석에 자리하는 괴신사이다. 리허설 도중에 연속적으로 사고가 일어나자 주역 여가수인 카를로타가 출연을 거부한다. 합창 단원들의 추천으로 무명인 크리스틴이 대역으로 나서서 노래를 완벽하게 부르고 공연은 대성공을 거둔다. '오페라의 유령'은 오페라《한니발》의 리허설을 끝내고 분장실로 돌아온 크리스틴을 납치하여 분장실의 거울을 통해 지하 호수에 있는 마궁으로 사라진다. '오페라의 유령'은 크리스틴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바치면서 자기가 작곡한 노래를 오페라에서 노래해줄 것을 간청한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괴신사의 얼굴을 본 크리스틴은 경악하고 오페라 극장에서는 예기치 못한 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한다. 두려움에 떠는 그녀에게 연인 라울은 자신을 믿으라며 사랑을 고백한다. 6개월 후 공연 날 '오페라의 유령'은 등장인물로 변신해 크리스틴을 납치한다. 마궁에 뒤따라온 라울이 함정에 빠져 위험에 처하자 그녀는 그를 구하려고 '오페라의 유령'에게 키스를 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유령은 그들을 풀어준다. 경찰이 마궁을 덮쳤을 때 '오페라의 유령'의 흰 가면만이 그들을 맞이한다.


주요 등장인물

팬텀(유령)


오페라의유령 팬텀.png

원작에서 이름은 에릭이나 뮤지컬에서는 단 한 번도 이름이 불리지 않고 그냥 유령으로 통한다. 오페라의 유령의 메인 빌런이자 진(眞)주인공(처음엔 주인공이 아니었지만, 중후반부에 돌입하면서 주인공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엄청난 활약을 펼치는 캐릭터)이다. 한 마디로 주인공이 최종 보스인 사례로 그 자신이 곧 '오페라의 유령'이다. 가면을 쓴 남자의 이미지가 신비하고 위험하게 보이게 된 것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음악과 과학에 조예가 깊고 건축 분야에서도 실력이 좋다. 얼굴이 흉측하게 망가져 있어서 늘 가면을 쓰고 다니는 인물이다. 짝사랑하는 크리스틴을 갈망하며 그녀만을 보지만, 그것과 별개로 극장에서는 지배인들을 협박해서 매번 돈을 뜯어 가고 크리스틴을 프리마돈나로 세우기 위해 카를로타를 쫓아내고, 샹들리에 테러와 부비트랩으로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하고 죽이는 등 끊임없이 민폐를 저지른다. 각종 사건사고를 저지르고 다닌 것치고는 희한하게도, 백마 탄 왕자님 포지션인 라울보다도 팬이 많다.


크리스틴 다에(Christine Daa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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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출신이며 아버지 귀스타브 다에(Gustave Daaé)와 함께 살다가 프랑스로 건너왔다. 소설의 크리스틴은 이미 고정된 배역을 맡고 있었던 가수인데 반하여 뮤지컬의 크리스틴은 발레단 단원이자 코러스 걸이었다. 팬텀이 짝사랑하는 여자이다.

아버지가 약속한 '음악의 천사'에 낚여 유령을 아버지가 보내준 천사라고 믿고 철석같이 따른다. 소설에 비해 유령에 대한 의존도가 유난히 강한 편이며 유령의 간섭에도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벌벌 떨며 따른다.

크리스틴은 지하 마궁으로 인도되었다가 유령의 가면을 벗기며 실체를 알게 된다. 이때부터 유령의 정체를 불신하기 시작하지만, 예속된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유령이 등장하기만 하면 바로 정신줄을 놓고 홀린 듯이 행동한다. 유령이 아빠 무덤 위에 올라가서 깽판을 부려도 정신을 못 차린다.

그러나 작품이 진행되며 정신적으로 성장한 크리스틴은 아버지의 잔재를 완전히 벗고 유령 역시도 아버지와 별개의 독립된 개체로서 인정하게 된다. 유령은 재차 분노하며 그녀를 마궁으로 끌고 가지만, 크리스틴은 그때부터는 벌벌 떨거나 홀리지도 않고 심지어 유령의 행동에 대들고 화를 낼 수 있게 된다.

뮤지컬의 클라이막스에서, 크리스틴은 유령에게 혼자가 아님을 표현하기 위해 키스를 하고 유령은 여기에 넋이 나가 크리스틴과 라울을 풀어준다.


라울 드 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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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에 등장하는 주인공. 소설은 라울 시점에 가깝단 점에서 페이크 주인공(설정상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주인공 보정을 전혀 받지 못하고 결국 다른 캐릭터에게 주인공 자리를 빼앗기는 캐릭터) 속성이 있다는 평가가 있다. 귀족으로 자작 작위를 가지고 있기에 공식직함은 샤니 자작이다. 주인공 크리스틴 다에와는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크리스틴이 무대에서 납치 당하자 크리스틴을 구하러 떠나나 오히려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고문실에 갇히고 크리스틴을 도리어 난감한 상황에 몰아 넣는다. 한마디로 구하러 왔다가 상황만 악화시키는 등 별로 도움은 안된다. 이후 고문실에서 열기와 환영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다가 크리스틴에 의해서 구출되는 등 별로 활약상이 없다.

한편으로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유령의 소굴로 연인을 찾아 홀로 난입한 것은 분명히 무모하고 위험한 행동이지만 동시에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목숨을 던질 수 있는 정의롭고 용감한 인물이다. 유령처럼 연인을 차지하기 위해 극장에 무차별 테러를 가하고, 거절 당하면 폭탄을 터트리려 하고, 거절 당할까 봐 다른 남자를 빌미로 협박을 하는 유령에게 맞설 만한 강한 정당성을 품고 있지만, 유령의 대적자에 걸맞은 유능한 활약을 보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지리 부인

파리 오페라 하우스 내 무용단의 감독이다. 지배인들도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무서운 성격의 소유자인데 아마 그녀가 유령의 경고 내지는 편지를 매번 대신 전달한다는 점도 한 몫한 듯 하다. 단지 편지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유령의 과거사 및 은신처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있으며 라울 드 샤니를 지하 마궁으로 인도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원작에 나오는 페르시아인의 설정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빈틈없는 헤어 스타일에 항상 새까만 옷을 착용하고 메이크업도 그야말로 흑백인 인물이다. 들고 다니는 지팡이로 가끔 바닥이 부서지도록 쿵 찍어 주의를 환기시키거나 경고를 준다. 원작의 어리바리한 아줌마와는 차원이 다른 캐릭터로 발레 무용수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오페라《한니발》공연 이후 크리스틴을 칭찬하고 무용수들에게는 너희들 춤은 한심했다며 야단을 치는 장면이 있다.


멕 지리

지리 부인의 외동딸이며 파리 오페라 극장의 무용수다. 여주인공인 크리스틴 다에의 단짝친구라는 설정이 붙으면서 소설에 비해 뮤지컬에서 비중이 좀 더 커졌다. 배역을 맡는 배우의 실력만 가능하다면, 뮤지컬 상에서 프리마 발레리나가 될 수도 있다.

유령이 나타났을 때 뻑하면 'He's there, the phantom of the opera!'라고 외치는 것이 주특기. 배우들도 하다보면 이 부분+비명에는 득음한다. 유령을 매우 두려워하면서도 궁금해 했던 듯, 크리스틴이 납치 당하고 라울이 지하 마궁으로 가려고 하자 따라가려 한다. 심지어 엄마가 저지하는데도 남자 옷을 입고 혼자 내려가서 유령의 가면을 발견하고 뮤지컬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한다.

사실 뮤지컬의 프롤로그에서부터 등장한다. 바로 라울 드 샤니가 경매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원숭이 오르골을 구입하려 할 때 같은 상품을 두고 경쟁이 붙었다가 라울을 알아보고 양보하는 부인이다. 이 때는 어머니 지리 부인 역의 배우가 대신 맡는다.


카를로타

오페라 극장 가르니에 궁의 프리마돈나. 풀네임은 칼롯타 기우디첼리이다. 한국 정발판에선 '카를로타'로 번역되었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연속으로 주연 소프라노를 맡은 이름 있는 여가수다. 다만 성격은 매우 나쁜 듯 하다. 작중의 대사에 따르면 가르니에 궁에서 다섯 시즌 연속으로 주역 소프라노였다고 한다. 다섯 번째로 주연을 맡을 작품이 오페라《한니발》의 카르타고 여왕 엘리사 역이었는데, 드레스 리허설 중에 유령이 무대 장치를 떨어뜨려서 카를로타의 화를 돋운다. 카를로타가 출연 안 하겠다고 선언하고 간 바람에 졸지에 그 자리는 크리스틴이 차지한다.

크리스틴의 등장에 위기감을 느끼고, 유령의 협박편지는 상큼하게 씹은 다음 오페라《일 무토》에서 주연인 백작부인 역을 따낸다. 그러나 무대에 올라가서 노래한지 5분도 안 되어 유령이 나타나 무대에 훼방을 놓기 시작한다. 유령의 목소리를 들은 크리스틴이 무대 위에서 입을 열자 크리스틴에게 '두꺼비 같은 계집애'라며 막말을 하고, 이 얘기를 들은 유령은 열이 받았는지 정말 두꺼비 소리를 내게 만들어 버린다. 더 이상 못 하겠다며 울고 결국 이 자리도 크리스틴이 따낸다. 그 다음부터는 주연으로 서지도 못하고 연일 굴욕을 겪는다. 유령은 카를로타가 연기 못 한다면서 격하게 까곤 한다.

역대 캐스팅

<오페라의 유령 한국 뮤지컬 역대 출연진> 출처:나무위키
배역 2001 초연 2009 재연 2023 삼연
팬텀 윤영석, 김장섭 윤영석, 양준모, 홍광호 조승우, 최재림, 김주택, 전동석
크리스틴 이혜경, 김소현 김소현, 최현주 손지수, 송은혜
라울 류정한 홍광호, 정상윤, 손준호 송원근, 황건하
카를로타 윤이나, 이유라 윤이나, 최주희 이지영, 한보라
지리 부인 노지현 정단영 조하린, 이지나(커버)
멕 지리 노지현 정단영 조하린, 이지나(커버)


넘버

출처: 마침내... 13년 만의 한국어 공연!_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2023) 후기|작성자 tig_n_yore

프롤로그

The Stage of Paris Opera House

모포로 싸여져 있는 물건들과 먼지 쌓인 낡은 조각상들이 보인다. 낡아버린 오페라 하우스. 바로 그곳에서 뮤지컬의 마스코트 격인 샹들리에가 처음 모습을 선보인다. 그리고 차례로 들어오는 딜러와 손님들. 좌측에는 휠체어를 탄 노인이, 우측에는 베일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위치해 있는 이곳은 바로 파리 오페라 하우스와 관련된 물품이 한창 팔리고 있는 경매장이다. 한때 극장에서 절찬리에 공연되었던 오페라 '한니발' 포스터 다음 순서로 등장한 경매 물품은 심벌즈를 든 원숭이 모양의 오래된 오르골이었다. 허나 이 물건을 목격한 사람들 중 두 사람만큼은 수많은 감정이 오가는 듯 보인다. 이는 바로 좌측에 위치한 라울 드 샤니 자작과 우측에 위치한 지리 부인이었다. 이 둘은 이미 오래전, 오르골을 목격한 적 있었다. 이제 자세한 정황을 아는 사람을 꼽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된 그 사건, 오페라 하우스에 나타났다던 유령의 실체.

Overture

이번 경매의 하이라이트였던 경매번호 666번. 무대 중앙에 위치한 이 거대한 물건이 모습을 드러내고, 과거 휘황찬란한 자태를 뽐냈던 샹들리에를 복구시키는 것을 기점으로 모두가 시간 여행을 시작한다. 경매사가 전기선을 잇는 순간 스파크가 튀며 조명이 들어오는 샹들리에는 포물선을 그리며 객석 4~6열 사이를 지나 천장을 향하고, 커튼으로 꽁꽁 싸여있던 무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과거의 명성을 찾아 화려하게 빛난다. 무대 사이드에는 오페라 하우스를 장식하는 금 조각상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무대가 재구성되기 위해 스러져 있던 배경들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노래에 맞추어 기이하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무대를 보면 마치 극장 전체가 마법에 걸리는 기분이 든다.

1막

A Rehearsal for Hannibal / Think of Me (Introduction) - 칼롯타, 피앙지, 합창단, 발레단, 앙드레

마법이 걸린 순간, 어느새 수많은 앙상블들이 무대를 꽉 채우고 관객들은 오페라 '한니발'의 리허설 장면 중간에 도착하게 된다. 실제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작곡하면서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가상의 오페라를 몇 작품 만들어내는데, 오페라 '한니발' 이 그들 중 하나이다. 이 한니발은 실제 베르디가 작곡한 '아이다'에서 모티프를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여주인공을 맡은 카를로타의 아리아로 시작되는 오페라 한니발은 오프닝에 나오는 짧은 장면 치고는 어마무시하게 화려하다. 게다가 실제 인물이었던 한니발을 묘사하기 위해 코끼리 모형까지 동반되는데, 이 코끼리 모형에 끙차끙차 올라가는 피앙지가 참 시선 강탈이다. 눈 둘 곳을 못 찾을 정도로 화려한 이유에는 의상 역시 한몫을 톡톡히 한다. 무희와 남자 무용수들은 과거 카르타고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원색의 무늬뿐만이 아니라 번쩍거리는 재질로 만들어진 민소매 드레스와 바지들을 입고 등장한다. 한 땀 한 땀 수놓인 의상에는 금박과 여러 보석을 달아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절그럭거리도록 연출하였는데 장식 하나하나에 깃든 섬세한 손길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성공적으로 리허설이 끝나는듯했지만 피앙지의 '로마'발음이 문제였나 보다. 음악감독이 성을 내며 무대로 올라오자 무용수들은 긴장을 풀며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놈의 발음으로 계속 꼬투리를 잡는 것에 성이 난 카를로타가 짜증을 잔뜩 부리기 직전, 타이밍 좋게 새로운 극장장이 등장한다. 리차드 피르맹과 질레스 앙드레, 이들이 바로 새로운 에피소드의 시작을 여는 인물들이었다. 앙드레의 경우 오페라를 좋아하는, 예술에 조예가 깊은 극장장으로 나오기에 카를로타를 보자마자 탄성을 내지르며 '카를로타!'하고 입틀막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그의 카를로타 덕질은 극 내내 진행되는데 자잘하게 들어가는 그의 연기가 일품이다.

Think of Me - 크리스틴, 라울

여주인공이 파업을 선언한 이 상황. 으레 그렇듯 극장장들은 언더스터디를 부랴부랴 찾지만 언더스터디는 없다고 한다. 당장 임박한 무대인데 이걸 취소하게 되면 발생할 취소 수수료 때문에 난처해하던 와중 소심한 크리스틴 대신 멕 지리가 '크리스틴 다에가 노래 가사를 전부 다 알아요!'라고 나서준다. 개인적으로 이 멕 지리라는 인물이 꽤 상징적인 역할이라 생각되는 것이, 그녀의 말로 작품이 시작되고 그녀의 행동으로 작품이 닫힌다.

크리스틴 다에...? 그녀의 성을 들은 앙드레와 피르맹은 이상하게 낯설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한때 유명했던 스웨덴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귀스티프 다에의 딸이었던 것이다. 그래,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는 태도를 취하는 피르멩과 앙드레. 한 명은 돈이 될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한 명은 감히 카를로타를 대신할 실력이 되나 들어보자는 느낌이다. 모두가 깔아준 판이 너무나 낯설었던 크리스틴. 덜덜 떨면서 Think of me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모두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짓는 와중 지리 부인이 그녀에게 도망치지 말라는 뜻으로 지팡이를 내리치며 그녀에게 경고를 보낸다.

가지고 있던 삼색의 천을 돌리며 노래를 부른다. '어느 날, 그 어느 날 그대' 하면서 목소리에 힘이 서서히 들어감과 동시에 상황이 완전히 반전되는 게 점차 보인다. 카를로타 바라기였던 앙드레의 눈이 휘둥그레 커지면서 심장을 부여잡기 시작하고 다들 '어라?'하고 귀를 쫑긋 세운다. 그리고 피르맹 얼굴에 보이는 '됐다!'의 감정. 새로운 프리마돈나의 탄생이었다. 뮤지컬에서는 무용수 착장 위에 치마를 입히고 총 안무감독인 지리 부인과 음악감독이 크리스틴을 옆에서 열심히 코칭 해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사이에 양쪽에서는 박스석이 등장한다. 리허설 장면에서 또다시 본 공연으로 시간과 공간이 이동된 것이다.

Angel of Music - 멕, 크리스틴

크리스틴은 칭찬해 준 반면, 무용수들은 호되게 혼을 내는 지리 부인. 좌측 뒤 무대에서는 무용수들이 지리 부인의 지도로 계속 발레를 연습하며, 우측에는 크리스틴의 대기실 미니 세트가 등장하여 멕과 크리스틴이 이야기를 진행한다. 한편 크리스틴을 알아본 라울은 크리스틴을 찾아가고 싶어하고, 그런 그를 보며 카를로타 없이도 완벽한 무대에 만족해 하는 새 극장장들. 취소표가 하나도 안 나왔다고 좋아한다.

친구의 성공에 기뻐하면서도 그녀의 눈부신 성장의 비결을 묻는 멕. 하지만 크리스틴은 기뻐함과 동시에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세한 상황은 원작에서도 등장하지 않지만, 조금의 상상을 곁들이자면 팬텀은 그녀를 원격으로 가르쳐온 것 같았다.

멕이 크리스틴을 부르는 소리에 이어 팬텀의 부름이 메아리처럼 공간을 울리고, 크리스틴은 팬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창백히 질린다. 크리스틴은 자신의 아버지가 음악의 천사를 보내주었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하지만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두려움은 왜일까. 아무래도 레슨이.. 혹독했던 건가?

지리 부인이 결국 농땡이를 피우고 있는 멕을 발견하고 '멕 지리. 넌 댄서 아니니?'라고 일갈하자 그녀는 '맨날 나만 연습하래..'라고 투덜거리며 대기실을 나서고, 비로소 혼자 남은 크리스틴.


Little Lotte... / The Mirror... (Angel of Music) - 라울, 크리스틴, 팬텀

득달같이 달려온 라울은 크리스틴에게 굉장히 아는 척을 한다. 혼자 앉아있던 크리스틴 역시 한때 자신의 애칭인 로티라고 부르는 라울을 알아본다. 이때 라울이 부르는 노래는 첫 등장 overture 때 들리던 멜로디와 같다. 아버지의 기억을 공유하던, 연인보단 먼, 친구보단 가까운 사이 같은 이 둘. 라울은 크리스틴과의 시간을 더 보내기 위해 그녀를 불러내지만, 크리스틴은 그녀에게는 아버지가 보내주신 음악의 천사의 명령으로 이곳을 떠날 수 없다 일갈한다. 하지만 라울은 그녀의 말을 우스갯소리로 넘겨버린다. 라울을 만나 반가웠던 것도 잠시, 그녀는 이전과 많은 것이 바뀌었다며 순식간에 절망에 빠지는 듯했다.

밖에는 라울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방에는 또다시 크리스틴 혼자 남은 상태. 음악의 천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팬텀 역의 배우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순간이다. 크리스틴의 대기실에 있는 커다란 거울을 통해 나타난 팬텀은 멘탈이 약해져 있는 크리스틴에게는 어마 무시한 존재였다. 천사, 거역할 수 없는 절대자. 감히 그를 함부로 정의하기엔 압도적인 존재. 크리스틴은 음악이라는 한 장르뿐만이 아니라 아버지가 보냈다는 천사라는 암시에 붙들려 스스로 자신을 그에게 반강제적으로 복종시키는 느낌이 컸다.

그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억지스러운 '음악의 천사'에게 순종하는 이유는 바로 그가 보여주는 압도적인 실력 때문이 컸다. 아버지가 보내주신 음악의 천사라는 팬텀의 가스라이팅은 암시에 가깝고, 이 말에 힘을 불어넣는 것이 바로 그의 목소리다. 그의 목소리에 홀린 듯이 거울로 들어가는 크리스틴. 그녀는 반은 자의로, 반은 타의로 거울 속 길을 따라 처음으로 그의 아지트를 향해 떠난다.

The Phantom of the Opera - 크리스틴, 팬텀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넘버다. 음악의 천사를 따라 거울을 통해 사라진 크리스틴. 라울은 크리스틴이 사라지고 나서야 겨우 방에 들어설 수 있었는데, 세트가 전부 사라지고 3층 가까이 되는 높이에서 다리가 나타난다. 뮤지컬에서 이 다리는 팬텀의 장소로 향하는 유일한 길을 의미한다.

한국판 The Phantom of the Opera 넘버는 통으로 AR이다. 사실 이는 관람 도중에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티가 난다.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순수 라이브가 아니잖느냐고 할 수 있지만 다음에도 훌륭한 공연을 해야 하는 크리스틴 배우가 매번 끝부분 클라이맥스에서 Ab5~E6 수준의 고음을 내지르면 목이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무대 바로 위에는 안개와 수십 개의 촛불이 등장한다. 그 사이를 뚫고 나오는 배. 오페라의 유령을 대표하는 두 개의 소품 중 하나인 배가 나타났다. (공연 중 배가 작동하지 않는 일이 발생해 관객들의 불평을 산 일이 있었다.) 호수의 물안개와 이에 따라 어른거리는 수많은 촛불들. 크리스틴은 팬텀의 목소리뿐만이 아니라 장소가 주는 신비로움에 아마 점점 취해갔을 것이다. 계속 크리스틴이 팬텀을 음악의 천사라고 불렀던 것과 다르게, 호수를 벗어난 뒤 팬텀이 크리스틴을 '음악의 천사'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팬텀의 지도에 따라 크리스틴은 초고음을 향해 아리아를 부르기 시작한다. 난생 처음 불러보는 음을 향해 치닫기 시작하는 크리스틴. 크리스틴은 자신이 이런 음을 냈다는 것에 놀란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목을 매만진다. 그녀가 E6을 찍고 나서야 만족했다는 듯 팬텀은 바로 뒤이어 노래를 시작하는데 이때 팬텀은 흥분해서 오르간을 마구 쳐댄다. 예술적 절정에 다다른 두 사람의 고양된 모습을 볼 수 있다.


The Music of the Night - 팬텀

The Music of the night의 음은 굉장히 변주가 많은 편이다. 장조가 이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도중에 단조가 이어지고 진성을 쓰는가 하면 가성으로 마무리되는 굉장히 어려운 곡 중 하나다.

쾅쾅 오르간을 치던 팬텀은 어느 순간 부드럽게 바뀐 선율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렇게 강렬하던 멜로디가 이제는 자장가마냥 부드럽고 또 달콤하게 공간을 채운다. 팬텀의 이상향을 완벽하게 노래로 만든다면 바로 'The Music of the Night'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미 원작의 시점에서 크리스틴은 몇 번이고 팬텀과 함께 그의 아지트를 방문해온 상태이다. 그래서 첫 방문인 뮤지컬에서는 더더욱 그의 장소가 환상적이고 로맨틱하게 묘사된 듯하다. 팬텀은 멜로디를 통해 본능적으로 크리스틴을 조종한다. 제스처가 굉장히 섬세한데,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크리스틴의 옆뺨을 밀어내거나, 턱만 딱 잡고 자신에게 가지고 오거나, 눈을 감기고 고음을 뽑아내면서 그녀의 상체를 위로 끌어올리는 동작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 취해서 황홀해하는 크리스틴이 음악에 지휘 당하듯 조금이라도 반응하려고 하면 본인이 되려 놀라서 그녀를 밀어내는 모습을 보인다. Music of the Night에서 밤은 팬텀 자신을 의미한다. 그런 밤의 노래를 듣고 즐기라는 말은 어쩌면 크리스틴에게 하는 가장 우아한 첫 고백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팬텀은 애초에 자신이 있는 그대로 사랑 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진 자이기에 정상적으로 크리스틴을 사랑하지도, 또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 역시 인지하지 못한다. 그런 그는 그녀를 위해 준비한 웨딩 드레스와 마네킹을 보여준다. 팬텀이 목소리로 크리스틴을 다 홀려 놓고, 초를 치는 부분이다. 크리스틴을 똑 닮은 마네킹이 웨딩 드레스를 입고 있고, 거기다가 특수효과도 주고 싶었던 건지, 마네킹을 움직일 수 있게도 만들어 놓은 팬텀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크리스틴은 까무룩 혼절하고 만다.

I Remember... / Stranger Than You Dreamt It... - 크리스틴, 팬텀

혼절한 크리스틴을 배에 뉘여두고 자기는 우측에 설치된 오르간 쾅쾅 치는 팬텀. 이때 그가 치는 노래는 2막에 등장하는 '돈 주앙의 승리' 속 멜로디다. 이 사이에 의상이 바뀐다. 판초를 쓰고 위에는 초록색 모자를 쓰고 있는 팬텀. 이는 원작 속 팬텀이 실제로 페르시아에서 근무했다는 경험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현재는 이란이 된 페르시아 지방의 전통의상을 닮은 걸 보면 꽤 의상에도 신경을 쓴듯하다. 오르간 소리에 이어 흘러나오는 원숭이 오르골 속 마스커레이드. 2막의 첫 넘버인 마스커레이드의 화려함은 전혀 닮지 않은, 동화 같은 그 멜로디에 눈을 스르르 뜬 크리스틴. 그녀는 팬텀이 두려웠지만 동시에 몹시도 궁금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인 줄도 몰랐던 음악의 천사가 내 눈앞에 서 있는 게 신기했는지 그의 앞에서 가면을 자꾸 벗기려는 크리스틴. 그녀는 뮤지컬의 첫 장면에서 라울이 부르던 멜로디를 부르며 팬텀의 뒤에서 몇 번이고 서성거리다가 결국 가면을 벗기는데 성공한다. 가면이 벗겨진 후 그 안의 끔찍한 실체를 두 눈으로 확인한 뒤에야 그녀는 그가 결함이 있는 인간임을 깨달은 듯해 보인다. 그래서 생각보다 가면 속 얼굴을 보고도 딱히 질색하거나 혐오스러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작곡에 여념이 없던 팬텀은 그녀의 손짓을 눈치채지 못했고 가면과 모자가 벗겨지고 나서야 경악하며 크리스틴을 쳐다본다. 자신이 가장 숨기고 싶었던 치부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들킨 팬텀이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분노였다. 그녀에게 '저주해!' '증오해!'를 외치며 그는 불같이 화를 퍼부어댄다. 그의 감정에 못 이겨 주저앉은 크리스틴을 향해 팬텀은 똑같이 누워서 기어가기 시작한다. 뒤에 이어지는 Stranger than you dreamt it은 2막의 마스커레이드의 Why so silent와 같은 멜로디를 가진다.

세상을 향한 분노. 이것이 바로 팬텀이 가진 주 감정이기 때문에 무엇 하나 어긋날 때마다 호통과 분노로 가장 먼저 대적하지만 그 바닥에는 발악하는 한 초라한 남성이 있었다. 울컥 솟아오른 분노가 가신 뒤 그에게 남은 것은 열등감과 추한 자신의 모습과, 이를 그대로 눈에 담고 그를 쳐다보는 크리스틴뿐이었다. 그걸 점점 자각하는지 시간이 지나갈수록 유약해지는 팬텀이 보인다. 그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으며 '오... 크리스틴...' 하고 애원하는데, 혐오와 공포로 가득할 거라 생각한 크리스틴의 눈에 두려움이 보이지 않자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 밀려온다. 전혀 기대하지 못한 자그마한 희망과 애정. 프로그램북에 적힌 시놉시스에 따르면 이때 크리스틴은 자신이 팬텀의 사랑의 대상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상대방도 이미 깨달은 사랑을, 팬텀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가면을 쓰자마자 다시 독선적인 팬텀으로 변모하는 그. 가면을 쓰고 머리를 쓸어올리는 팬텀. 끝내 우악스럽게 크리스틴의 팔을 잡아채서 일으켜 세우는 팬텀은 그의 보금자리에서 그녀를 추방하기에 이른다.


Magical Lasso - 뷔케, 멕, 지리 부인, 발레단

세트가 또 급격히 변하면서 이어지는 장면은 바로 무대장치 담당인 뷔케와 발레단들의 장면이었다. 이 부분의 멜로디 역시 I remember와 overture과 유사한 멜로디다. 무용수들에게 겁을 주며 마법의 올가미를 운운하며 낄낄거리는 뷔케에게 지리 부인은 호되게 경고를 날린다.

뷔케는 뒤에 나오지만, 오페라 극장에서의 첫 희생자다. 따라서 이는 뷔케가 오페라의 유령에 대해 가볍게 입을 놀렸다는, 그의 죽음에 대한 명분을 주는 파트다.


Notes... - 피르맹, 앙드레, 라울, 칼롯타, 피앙지, 지리 부인, 멕, 팬텀

크리스틴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뒤 연일 표가 잘 팔리는 상황. 신문에 대서특필된 오페라 하우스의 소식을 보며 카를로타가 자리를 비운 와중에도 굴러가는 극장의 호재에 피르맹은 기뻐한다. 그를 찾아온 앙드레는 크리스틴과 카를로타 모두가 사라져서 당황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다. 우선 그들에게 도착한 편지가 있다며 피르맹은 앙드레에게 편지를 건네고, 이를 함께 읽기 시작하는 두 극장장.

첫 번째, 앙드레에게 도착한 편지는 '크리스틴의 성공적인 데뷔를 축하하지만 코러스와 무용수들은 엉망이고 못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자르라.'라는 내용이었다. 두 번째, 피르맹에게 도착한 편지는 월급 지급의 지연에 대한 불만의 내용이었다. 두 사람은 '오페라의 유령'의 존재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가 단단히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작에서조차도 끝까지 두 사람은 오페라의 유령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5번 박스석에 대해 수많은 실험을 진행하는데 그곳에서는 놀랍게도 목소리가 들리기도, 또 물건이 사라지기도 하는 기이한 현상들이 일어난다. 이에 대한 미스터리는 마지막에서야 풀리는데, 5번 박스석 옆의 기둥이 비어있었고 그 속에서 팬텀이 지리 부인을 이용해서 봉급을 전달 받고 사람들에게 경고를 주었던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등장한 라울. 그는 답답한 심정을 숨기지 않은 채 크리스틴이 어디로 간 건지 두 사람에게 묻는다. 자신에게 도착한 이 편지를 극장장들이 쓴 게 아니냐면서 말이다. 발신인이 묘연한 편지가 벌써 세 번째였다. 라울에게 도착한 편지에는, 크리스틴 다에에 대해서 걱정하지 말라는 친절한 문구와 그녀가 음악의 천사 아래에 있으니 찾지 말라는 경고가 함께 담겨있었다. 라울이 과연 미치고 환장할 만한 내용이긴 했다.

라울에 이어서 등장하는 사람들은 바로 카를로타와 피앙지였다. 카를로타 역시 라울처럼 크리스틴이 어딨냐며 분노하면서 등장하지만 이유는 달랐다. 카를로타는 자신에게 '라울'이 편지를 보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발신인은 라울이 아니었다. 그녀의 편지 내용은 악플러가 보낸 험담 그 잡채였다. 크리스틴이 당신의 자리를 대체할 테니 물러날 준비나 하라는 악질적인 내용을 받고서 카를로타가 화가 안 났을 리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리 부인 모녀가 무대 좌측에서 등장한다. 지리 부인은 크리스틴은 무사히 돌아왔고 지금은 휴식이 필요한 상태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틴을 보려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물리며 그녀는 또 다른 편지를 건넨다. 발신인을 알고 있었던 지리 부인은 '유령'이 보낸 최후통첩을 피르맹에게 뺏기고, 피르맹은 편지를 소리 내어 읽기 시작한다.

피르맹이 시작했지만, 편지의 내용은 팬텀의 목소리로 이어지는데 이 연출은 고전적이면서도 꽤 신비로운 편이다. 물론 녹음본이지만, 팬텀의 목소리를 조절하여 사운드가 왼쪽, 뒤, 앞, 오른쪽으로 돌아가면서 서라운드로 송출되게끔 한다. 이는 비밀스러운 팬텀의 존재감을 돋보이게 하면서 동시에 주변 인물들이 느끼는 공포감을 조성시킨다. 게다가 이 멜로디 역시 overture 속 라울의 멜로디와 유사하다. 몇 구간 변주가 있지만, 이 정도면 그냥 모든 사람들이 이 멜로디를 부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극장장들과 라울, 카를로타, 피앙지 그리고 지리 모녀들은 편지 내용이 울려 퍼지는 동안 규칙적이면서 동시에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데, 이 오묘한 움직임을 통해 팬텀을 향한 시선을 강조하는 듯 보인다.

유령의 편지가 끝나자마자 말 그대로 대노하는 카를로타. 그녀는 유령의 존재를 믿는 듯 보이지만 결국 이 모든 일의 원흉은 하나였다. 바로 크리스틴 다에.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모든 것을 빼앗아버리려는 크리스틴. 씩씩거리는 카를로타를 달래기 위해 피르맹과 앙드레는 절대 유령의 지시를 따르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여기서부터 아주 난장판이 된다. 열이 받을 대로 받은 카를로타, 옆에서 그녀를 토닥이며 보필하는 피앙지. 그리고 그녀를 달래려고 애를 쓰는 피르맹과 앙드레. 유령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재앙이 들이닥칠 거라고 경고하는 지리 부인. 아, 다 모르겠고 크리스틴을 봐야겠다는 라울.

각자 쏟아내는 성량과 그 음압이 장난이 아니라서 머리는 터질 것 같은데 귀는 호강하는 파트라고 말할 수 있겠다.


Prima Donna - 피르맹, 앙드레, 라울, 칼롯타, 피앙지, 지리 부인, 멕, 팬텀

그 난장판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멜로디. 바로 피르맹과 앙드레가 카를로타를 위해 부르는 넘버가 바로 프리마돈나다. 'The phantom of the opera'를 기대하고 들어가서 나올 때는 흥얼거리는 게 프리마돈나뿐이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넘버의 중독성이 어마무시하다. 새로운 작품인 '일 무토'의 여주인공인 백작부인 역을 크리스틴에게 배정한 팬텀과 달리, 두 극장장들은 카를로타를 백작부인으로 배정하겠다고 선언하고, 그녀의 불편한 심기를 잠재우기 위해 되려 크리스틴을 '말을 하지 못하는 역할'에 배정하겠다고 결정한다. 추가로 이어지는 '대중이 그녀를 원하고 있다'라는 아부성 플러팅에 결국 입술을 삐죽이던 카를로타는 평소 그녀의 스탠스를 되찾으며 프리마돈나에 동참한다.

프리마돈나 씬에서 카를로타는 착장부터 화려하다. 짐승의 털로 이루어진 숄을 두르고 등장한 카를로타는 자신만이 오로지 진정한 '프리마돈나'라고 자리매김한다. 옆구리 콕콕 찌르는 극장장들의 아부에 사실은 기분이 좋았으면서 '내가 이번만큼은 넘어가 준다!' 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도 악역이기엔 너무 사랑스럽다. 후반부에 치달으면서 프리마돈나는 극장장들과 카를로타, 피앙지 그리고 나머지 인물들의 파트로 나누어진다.

지리 부인에게 그놈의 '음악의 천사'는 누구냐고 묻는 라울. 카를로타, 피앙지 그리고 극장장들은 새로운 작품인 일 무토의 성공적인 기원과 프리마돈나 카를로타의 화려한 컴백을 자축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마지막에 다 같이 다시 무대가 열릴 거라는 내용으로 같이 합창하면서 돌아올 때 다양한 음색이 내뿜는 성량이 압도적이다. 그리고 그 위에서 하이로 노트 찍어주는 카를로타.

그들의 노래를 들은 것인지, 팬텀은 자신의 말을 거역하려는 이들을 보며 전쟁을 선포한다.


Poor Fool, He Makes Me Laugh - 칼롯타, 피앙지, 앙상블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만을 위해 만들어낸 두 번째 오페라가 바로 '일 무토'다. 일 무토(il muto)는 이탈리아어로 무음을 의미한다. 이는 일 무토의 여주인공인 백작부인의 애인인 언어장애인 세라피모를 의미하는데 여러 실제 오페라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및 요판 스트라우스 2세의 박쥐)를 따온 모습을 보여준다.

무대에서는 극중극인 오페라 일 무토의 장면이 시연되고, 그 한 장면을 위해 앙상블들은 하얗게 분칠을 하고 흰 가발을 높게 머리 위로 올린 채 등장한다. 이는 18세기 프랑스, 로코코 풍의 복식과 패션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극중극이지만 일 무토는 나름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백작부인 역인 카를로타는 늙은 백작 몰래 하인인 세라피모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으며, 이를 어렴풋이 짐작한 백작이 이를 밝혀내는 그런 막장 스토리를 토대로 한다. 백작 역을 맡은 앙상블은 주름을 깊게 칠하고 나와 극저음을 찍어준다. 백작부인의 비밀 애인인 세라피모는 하녀로 변장한 채 등장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던 백작은 열정적으로 침대 청소를 하는 세라피모를 보고 황홀해 한다. 몰래 백작이 몸을 숨기자, 그제야 본색을 드러내며 백작을 비웃기 시작한 백작부인. 일 무토에서는 실제로 웃음소리를 노래에 넣어 기교를 부리는데 여기에서 또 성악만이 가지는 공명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녀가 입을 가린 부채를 접고 세라피모에게 변장을 풀라고 하자, 입고 있던 치마와 모자를 집어던진 채 백작부인에게 달려들어 찐한 키스를 날리는 크리스틴. 이때 한 쪽 발은 하늘을 향해 드는 게 킬링 포인트다.

극 밖에서는 한니발 때처럼 양쪽에서 박스석 세트가 등장하는데, 각자 이유는 다양했지만 팬텀의 경고를 다 같이 무시하기로 한 이들 중 라울은 다름 아닌 본인이 자처해서 5번 박스석에 앉아있었다. 이를 목격한 팬텀은 열이 단단히 났을 터. 오페라 일 무토는, 결국 그가 언급한 것처럼 전쟁터가 되어버린다.

오페라가 진행되는 도중 극장을 울리는 팬텀의 목소리로 인해 패닉에 빠진 사람들. 크리스틴은 저도 모르게 '그야... 그가 왔어.'라고 웅얼거리고, 이를 귀신같이 잡아챈 카를로타는 네 역할은 말 못 하는 벙어리임을 잊지 말라며, 추가로 두꺼비라고 그녀를 비꼰다.

관중을 안심시키고 재개한 공연 중에 결국 두 번째 사고가 발생한다. 꾀꼬리 같던 카를로타의 목소리에서 다름 아닌 두꺼비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카를로타의 목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기엔, 본인마저 너무 당황한 표정이다. 결국 그 소리는 몇 번을 지속해도 멋대로 튀어나오고야 마는데. 그리고 이 두꺼비 소리를 카를로타 역들이 육성으로 흉내 내서 부르는데 그게 꽤 생동감이 넘치는 두꺼비 소리 (아옹로로오롥!)인데다 두꺼비 소리가 언제 또 튀어나올지 몰라 엄청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카를로타의 연기가 두드러진다. 팬텀은 그녀에게 벌어진 대참사에 껄껄 웃으며 이러다 샹들리에마저 떨어질 것 같다며 후일의 사건에 대한 복선을 넌지시 던진다. (팬텀의 대사가 나올 때마다 실제 팬텀 역을 맡은 배우들이 샤롯데씨어터 지붕 쪽에서 이리 뿅, 저리 뿅 등장하니 다들 꼭 놓치지 않고 순간포착하셔야 한다.)

결국 긴급상황을 대처하기 위해 앙드레가 직접 무대로 나와 팬텀이 일전에 지시한 대로 크리스틴을 백작부인으로 캐스팅 변경하여 진행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무료하지 않도록 갑작스럽게 3막의 발레 씬을 감상할 수 있게 준비하겠다고 한다.

의상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오페라의 유령'답게 발레씬도 참 무대와 의상이 예쁘다. 발레리노의 리드에 따라 발레를 진행하는 무용수들은 예쁜 녹색 피크닉 드레스에 꽃 장식이 달린 러블리한 의상을 입고 꽃 원형 장식을 들어 올리며 안무를 진행한다. 하지만 도중도중 조명이 멋대로 움직이는 사고가 나타나는데, 요상하게 무대 뒤편으로 거대한 그림자가 섬뜩하게 나타난다. 팬텀이 또, 무언가를 작정하고 있는 모양인데 관객 입장인 우리와 무대 이리저리를 누비던 발레리노만이 이를 보고 기겁한다. 그러다 발레리나들마저 그림자를 보고 경악하기 시작하자 위에서 밧줄에 걸린 무언가가 떨어진다.

그것은 바로 무대장치 담당자였던 뷔케의 시신이었다. 난데없이 무대에 등장한 시체를 보고 다들 귀가 떨어져라 소리를 지르고 무대는 말 그대로 난리가 난다. 결국 피르맹마저 튀어나와서 이것은 단순한 사고일 뿐이라고 진정하라 하지만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간 판국인데 그게 말이 되겠는가. 팬텀의 등장부터 잔뜩 불안해하던 크리스틴은 결국 지하에 위치한 그와 가장 먼 곳인 오페라 극장의 천장으로 뛰쳐나가고, 그녀를 주시하던 라울 역시 그녀를 따라 위로 향한다.


Why Have You Brought Me Here? / Raoul, I`ve Been There - 라울, 크리스틴

공포에 찬 크리스틴과 그런 크리스틴을 달래는 라울이 부르는 넘버다. 이는 사실, 이전의 넘버 'The Phantom of the opera'씬의 멜로디를 그대로 사용한 장면이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이어진 Raoul, I've been there은 이전엔 팬텀이 부르던 'Music of the night' 멜로디였지만 이젠 크리스틴이 부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멜로디는 다시 2막의 후반부에 나오는 'Finale' 파트로 향하다가 다음 넘버인 'All I ask of you'로 넘어간다.

크리스틴은 이 장면에서 기존 세라피모 착장에 치마만 두른 상태인데 이대로 가발만 쓰고 재개하는 일 무토 장면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꽤 화려하다. 이 위에 망토를 써서 평상복인 것 마냥 위장이 이루어진 상태로 지붕씬이 이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장면에서 천장 가운데 툭 튀어나와있는 천사상이 하강한다. 이는 팬텀이 극장 천장마저 장악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는다는 뜻이다. 팬텀에게 질려버린 크리스틴이 결국 라울에게 모든 걸 고백하는 장면이라고 보면 된다.

뷔케의 시신을 보고 공포에 질린 크리스틴은 당장이라도 팬텀이 나타나서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라울에게 호소한다. 라울은 정신없이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는 크리스틴을 현실로 되돌리기 위해 수없이 노력하며 '오페라의 유령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때 라울의 반응도 배우마다 조금씩 다른데, 황건하 배우의 라울은 팬텀의 존재에 대해 분노하고 막 흥분하는 반면 송원근 배우의 라울은 엄청 침착하게 달래듯 다가가는 게 대조되는 포인트다.) 라울은 재차 그녀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지만, 크리스틴의 귀에는 그 외침 속에서 환청처럼 팬텀의 목소리가 함께 들려오기 시작한다.


All I Ask of You - 라울, 크리스틴

라울의 노력이 빛을 발해 크리스틴은 혼란스러움을 일시적으로 잠재운 상태가 되었다. 그런 크리스틴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망토 모자를 내려주며 고백을 시연하는 라울. 무엇 하나 정확하지 않은 이 혼돈 속에서 지속적인 확실함을 주는 라울은 크리스틴에게 가장 믿음직한 회피로였을 것이다.

라울이 가진 감정만큼은 절대 팬텀이 침투할 수 없었던 장면이기에 'All I ask of you'는 앞서 나온 멜로디와 전혀 겹치지 않는다. 넘버 가사를 살펴보면 어둠을 잊고 자신과 함께 빛과 자유를 향해 나가자는 내용인데, 앞서 언급된 'Music of the night'과 꽤 대조되는 내용임을 알 수 있다. 그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예전의 로티, 밝던 소녀의 웃음을 되찾은 크리스틴은 그의 품에 안겨 몇 번이고 회전 당한다.

그렇게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은 기쁨에 차서 함께 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대가 끝나고 함께 떠나자고 말하는 크리스틴은 어느새 팬텀과 함께 했던 멜로디는 잊어버린 채 'All I ask of you'를 열창한다. All I ask of you의 번안인 '바램은 그것뿐'이라는 말이 참 어여쁘게 다가온다. 크리스틴이 라울에게 약속을 바라는 걸 보면 자신을 사랑해달라, 진실만을 말해달라 하는데 이 모두 팬텀한테는 얻지 못한 것들이다.


All I Ask of You (Reprise) - 라울, 크리스틴, 팬텀

사라지는 두 사람 앞으로 내려온 천사상에서 검은 형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천장에서 하강한 천사상 안에 팬텀이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당당하고 거만했던 팬텀은 마치 누군가에게 두들겨맞은 듯 휘청거리며 천사상을 겨우겨우 짚고 몸을 일으킨다. 언제나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했던 크리스틴이 다른 이에게 사랑을 말하는 걸 보며 늘 세상에게 외면 받고 상처 받으며 무던해졌던 팬텀의 심장이 갈기갈기 찢긴 모양이다. 팬텀은 처음 겪는 괴로움에 눈에 띄게 고통스러워한다.

결국 그는 늘 그와 함께 했던 분노로 모든 감정을 갈무리한다. 저 멀리서 들리는 연인의 'All I ask of you' 노랫소리에 물기가 가득했던 목소리가 점차 진하게 변해가며 분노가 깃든다. 그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귀를 막으며 현실을 부정한다. 자신의 품 안에 있어야 하는 자신만의 소프라노가 저 멀리 떠나가는 것을 보며 더더욱 분노에 초점이 잡힌다. 라울과 크리스틴의 관계를 보고 사랑을 조금씩 깨달아간다는 게 마음이 아픈 장면이다.

어느새 무대로 돌아가 아주 훌륭하게 백작 부인을 소화해낸 크리스틴은 커튼콜을 위해 동료들과 함께 등장하는데 인사가 끝나자마자 실제 관객들 위에 있던 샹들리에가 낙하해서 무대로 떨어진다. 떨어지는 도중 가짜 스파크가 튀기에 독자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는 부분이다.

모두가 이것이 팬텀의 마지막 발악이자 최후통첩이라 생각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얻어걸린 일이었다. 마지막의 마지막이 돼서야 자신의 옛 동료에게 모든 걸 정리하면서 팬텀은 샹들리에는 낡아서 떨어진 거라고 말한다. 근데 더더욱 놀라운 것은 이 샹들리에 추락 사고로 한 명이 사망하는데, 그 사망한 사람이 극장장들이 지리 부인 대신 채용하려던 여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우연치고는 기막힌 운명의 장난이다. 뮤지컬에서는 카리스마 있고 팬텀의 유일무이한 신비로운 조력자로 나오는 지리 부인은 실제로는 그저 티켓 판매원으로 뮤지컬만큼의 신뢰나 깊은 관계는 아닌 것으로 비춰진다.



2막

Entr'acte

2막 시작할 때 본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곡 메들리가 연주된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모든 노래가 총집합되는 부분이다.


Masquerade / Why So Silent? - 앙상블, 크리스틴, 라울, 팬텀

2막의 첫 곡인 마스커레이드는 화려한 무대를 보여준다. 처음 넘버의 시작을 알리는 인물은 바로 해골 옷을 입은 앙드레다. 앙드레에 이어 등장한 피르맹은 가장무도회에 맞게 옷을 갖춰 입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첫 등장은 1막의 Note와 멜로디가 같다. 시간은 어느새 흘러 팬텀이 난리를 치고 난 지 6개월이나 지난 시점이다. 이제 모두들 팬텀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찾아온 평화와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리고 걷혀진 무대 뒤로는 모든 앙상블과 주조연들이 의상을 갖춘 채 계단에 빼곡히 자리해있다. 정말 사람 많다고 생각하겠지만 양측에 서있는 사람들은 마네킹이다. 계단에서 움직이는 사람들만 실제 배우이다. 족히 50~60벌이 되는 의상이 이 장면을 위해 만들어졌는데 실제 배우들이 입고 있는 의상에서는 각자 동물이나 상징을 찾아볼 수 있다. 심벌즈를 들고 있는 원숭이 인형을 빼다 박은 의상을 입고 똑같이 심벌즈를 치는 앙상블, 공작새를 표현한 의상, 어릿광대, 박쥐, 페어리 등등 그 종류도 몹시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크리스틴의 의상이다.

스타 프린세스 의상이라고도 알려진 크리스틴의 원피스는 새벽을 닮은 짙은 보랏빛으로부터 시작돼서 하단으로 갈수록 밝아지는, 새벽의 색과 비슷한 의상이다. 이는 밤과 낮의 경계에 있는 그녀의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가장무도회를 즐기는 와중, 몰래 약혼한 팬텀과 크리스틴은 둘만의 속삭임을 이어나가는데 이때의 멜로디는 Think of me다. 두 사람은 행복한 연인으로 발전했지만 비밀로 사이를 유지해야 한다는 크리스틴의 말에 라울은 불만이 꽤 있는 듯했다. 이때 아직도 그녀는 팬텀을 의식하는 듯 보인다.

그러던 와중 인파에 치여 두 사람이 흩어지게 되는데 서로를 찾는 것을 방해하는 앙상블들이 팬텀과 비슷한 가면이나 망토를 두르고 있다. 겨우 라울을 찾아 춤을 함께 추면서 Masquerade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다. 반음씩 올라가고 음압도 점점 커지고 심벌즈끼리 부닥치는 소리가 점점 커지는데, 그 사이로 미묘하게 들리는 Phantom of the opera 멜로디.

그가 등장한 것이다. 그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바로 크리스틴이었다.

쿵쿵 북 울리는 소리에 맞추어 계단을 내려오는 묘령의 남성. 해골 모양의 얼굴 마스크를 쓴 채였지만 하악골이 말하는 것에 맞추어 가면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모두가 눈치챈 그의 정체는 바로 잊혀졌던 '오페라의 유령'이었다. 왜 이렇게 조용하냐며 주변을 다그치며 그가 노래를 시작하는 첫 멜로디는 1막의 Note였지만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멜로디는 바로 곧 등장할 오페라 '돈 주앙의 승리'의 메인 멜로디다. 6개월 동안 칩거하면서 써내려나간 그의 역작 '돈 주앙의 승리'의 악보를 던지며 또다시 자신의 지시를 똑바로 따를 것을 명령한다. 모두가 6개월 전의 사고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를 막아설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크리스틴을 향해 직접적으로 손가락질하며 자신을 위해 노래해야 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팬텀은 깜짝스러운 등장만큼이나 놀라운 퇴장을 보여주는데 그의 퇴장을 위해 대역이 한 명 대기하고 있다가 계단 사이로 불과 연기를 피워내며 사라진다. 따라서 노래가 끝나고 사고가 일어난 시점의 팬텀은 대역이다.


Notes... - 피르맹, 앙드레, 칼롯타, 피앙지, 라울, 크리스틴, 지리 부인, 팬텀

1막의 Note와 데칼코마니처럼 보여지는 씬이 바로 2막의 Note.


We Have All Been Blind / Twisted Every Way - 라울, 피르맹, 앙드레, 크리스틴

그리고 이어지는 We have all been blind/Twisted every way. 1막과 다른 점은 멕 지리 대신 크리스틴이 편지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돈 주앙의 승리' 개막을 앞두고 바순을 잘라라, 코러스 좀 잘라라 등등 이리저리 지시하는 편지가 도착하고, 이미 오페라의 유령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앙드레와 피르멩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음을 시인한다.

상황은 격분한 카를로타가 등장하면서 최악으로 향한다. 두꺼비 소리로 겁을 먹었었지만 그녀는 유령을 향한 분노마저 크리스틴을 향해 돌리기 시작한다. 뒤늦게 등장한 크리스틴을 다들 주목하고, 안 그래도 벼랑 끝에 몰릴 만큼 몰린 그녀는 예전처럼 카를로타에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고 카를로타에게 맞서는 모습을 보인다.

정신없는 와중 지리 부인이 들고 온 또 다른 유령의 편지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에 도달한다. 이번에도 1막처럼 지리 부인의 목소리가 팬텀의 목소리로 변한다. 이리저리 참견하는 팬텀, 마지막으로 크리스틴에게는 Why so silent의 멜로디를 차용해서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종용한다. 크리스틴은 떨리는 목소리로 단호하게 그의 명령을 따를 수 없다고 말한다.

We have all blinded는 팬텀을 잡기 위해 라울이 방책을 떠올리면서 시작된다. 그놈의 유령이 집착하는 5번 박스석, 그곳을 향해 총을 겨누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 말에 솔깃한 두 극장장들과 달리 지리 부인은 경악하며 미쳤나고 연신 소리 지른다. 라울은 팬텀을 향한 작전에 외면하는 두 여인, 지리 부인과 크리스틴에게 도와달라 말하지만 두 사람은 각자의 이유로 이를 거부한다. 여기에 카를로타마저 끼어든다. 각자 멜로디가 각양각색이다.

그 난장판은 단말마의 비명과도 같은 크리스틴의 목소리로 끝을 맺는다. 그녀는 음악만큼은 팬텀에게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Phantom of the opera 끝부분의 멜로디가 흘러나오며 이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내용만큼은 처절하리만큼 크리스틴의 불행과 불안을 담고 있는데, 노래를 부르는 이상 팬텀을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을 구원해달라 매달리는 크리스틴. 라울은 팬텀은 유령이나 천사가 아닌 그저 한 '남자'일뿐이라고 크리스틴을 달랜다. 그런 그가 크리스틴을 달래는 과정에서 들리는 멜로디는 그 무엇도 아닌 'All I ask of you'인 것도 시종일관 유지된다. 그런 라울을 보면서 크리스틴은 스스로 왜 사람을 죽인 살인자인 걸 알면서도 저 사람을 거역할 수 없는지, 자신을 이렇게까지 만들어준 이를 미워할 수 있는지 상반된 물음을 던진다.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이 상황 속에서 그녀는 그저 신과 아버지만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라울과 다른 사람들의 설득에도 크리스틴은 현장에서 도망치고야 말고, 참다못한 라울은 결국 팬텀을 향한 전쟁을 선포한다.


A Rehearsal for Don Juan Triumphant - 칼롯타, 피앙지, 크리스틴, 합창단

그렇게 팬텀한테 불만들이 많은 것치고 다들 순순히 그가 전달한 악보를 드는 걸 보면, 그의 실력만큼은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었나 보다. 심지어 카를로타마저 리허설 때 앉아서 피앙지랑 같이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도망쳤던 크리스틴은, 일단 리허설은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한 건지 뒤늦게 지연 입장을 시도하고, 착한 멕 지리가 크리스틴의 옆에서 악보도 보여준다. 그래도 연습은 계속했던 모양인지 곧잘 진도를 따라잡고 들어간다.

문제는 늦게 들어온 크리스틴이 아닌 피앙지였다. 그의 이탈리아 억양이 너무나 강했던 나머지 음악 감독은 연습을 멈추고 바로 발음 교정에 들어간다. 안 그래도 크리스틴이 여주인공을 맡는 것도 열받아 죽겠는데 하나뿐인 약혼자가 발음으로 쩔쩔매는 게 맘에 들지 않았던 카를로타는 작곡가가 지금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문제냐고 핀잔을 준다. 남들한테는 떽떽거리지만 또 피앙지한테는 상냥하게 악보 가리키면서 알려주던 사근사근한 그녀. 카를로타의 말을 들은 지리 부인은 과연 정말로. 그가 여기에 없을지에 대해 반문하자 카를로타는 합죽이가 되어 입을 삐죽인다.

다시 연습은 재개되지만 또다시 튀어나온 피앙지의 발음 이슈에 꼬장꼬장한 음악감독은 연습을 멈추고, 폭발해버린 카를로타가 짜증을 내다 못해 냅다 소프라노 음역대로 해당 구절을 불러대는 등 난리를 친다.

모두를 입다물게 만든 것은 저절로 연주되기 시작한 피아노였다. 다들 입다물고 연습이나 하라는 뜻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없이 건반이 움직여지는 이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다 같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여기서 유일하게 제정신을 붙들고 있는 게 크리스틴이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팬텀의 감시 하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리자, 그녀는 멘탈이 완전히 나가버린 것 같았다.


Wishing You Were Somehow Here Again - 크리스틴

혼란스러운 크리스틴이 답을 찾기 위해 아버지의 묘지로 향하면서 부르는 In sleep he sang to me는 Phantom of the opera의 초반 부분과 같다. 팬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도 노력하고 있지만 영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녀는 또다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그에게 반항하지 못할까? 그가 한낱 인간일 뿐이란 것을 이제 충분히 그녀는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묻고, 또 물어도 스스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던 크리스틴. 결국 팬텀이 처음 그녀를 옭아맨 '음악의 천사'라는 존재에 대한 집착이 그와 자신을 동시에 붙잡고 있음을 인지하고 나서야 이 모든 것의 발원지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혼자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외로웠던 과거의 자신이 붙잡은 동아줄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개인적으로 크리스틴이 부르는 넘버 중에서 가장 어려운 넘버다. 특히 이때 등장하는 무덤 무대 세트는 딱 이때만을 위해서 존재하고, 그녀가 입은 원피스 역시 밝거나 원색이었던 과거와 달리 다크 블루톤의 어두운색이다. 크리스틴은 'Wishing you were somehow here again' 넘버에서 최고조의 감정을 터트린다.


Wandering Child... / Bravo, Monsieur...! - 팬텀, 크리스틴, 라울

이제는 답을 들려줄 수 없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괴로워하는 크리스틴에게 또다시 마수의 손길을 뻗는 팬텀. 무덤 위에 있던 십자가 안에서 팬텀이 등장한다. 팬텀이 크리스틴을 부르는 이 'Wandering Child'는 팬텀이 처음 거울에서 등장했을 때의 멜로디인 'Angel of music'과 같다. 그녀를 또다시 음악의 천사라는 명분으로 유혹하려 드는 팬텀.

나는 아버지가 말해준 그 '음악의 천사'이며 너에게 길을 알려줄 것임을 강조하는 팬텀의 아름답고도 부드러운 노랫소리는 마치 세이렌의 그것과도 같았을 것이다. 무덤 문이 스르륵 열리고 이곳으로 들어가려는 크리스틴을 막아선 건 다름 아닌 라울이었다. 두 번 당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하며 끊임없이 그녀를 암시로부터 깨우려는 라울은 저 사람은 음악의 천사가 아닌 그저 악마일 뿐이라고 소리 지른다. 그 덕분이었을까, 끝없는 절망을 이겨내기 위한 방어기제로 자신에게 걸어버린 마법에서 비로소 깨어난 크리스틴은 정신을 차리고 라울에게 안긴다. 이 장면에서 라울, 크리스틴 그리고 팬텀 세 사람이 함께 트리오로 부른다. 팬텀이 공격을 위해 불을 종종 사용하는 장면이 보이는데, 이는 원작에서 팬텀을 일컫던 지옥불에서 영감을 얻은 듯했다.

팬텀은 예전과는 다르게 자신이 아닌 라울과 함께인 크리스틴을 보며 절망하는 동시 분노를 숨기지 못하고 쏟아낸다. 라울을 비꼬듯이 대단하다 일컬으며 그를 향해 전쟁을 선포하고, 공격을 시작하는 팬텀. 둘이 그 공격을 피해 달아나자 앞에서 뜨거운 열기와 함께 불기둥이 솟아오른다.


Music from Don Juan Triumphant - 피앙지, 칼롯타, 크리스틴, 앙상블

'돈 주앙의 승리' 공연이 다가오고, 커튼이 가려진 채로 오페라 극장은 적막에 휩싸인다. 마치 폭풍전야마냥 조용한 곳에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경찰들. 그들은 라울의 지시에 맞추어 위치하고, 이상한 낌새가 나타나면 즉시 사살할 것을 명 받는다.

하지만 극이 시작하기도 전, 이상한 낌새를 어떻게 눈치채냐는 실랑이 도중 귀신같이 5번 자리에 팬텀이 나타나고, 그때를 놓치지 않고 병사는 그를 향해 발포하지만 결국 그를 놓치고 만다. 이에 화를 내며 왜 총을 쏘냐고 묻는 라울. 때맞춰 'Why so silent' 멜로디가 나오고 이에 맞추어 홀린 듯이 움직이는 극장장들-경찰들-라울. 이제 정말 '돈 주앙의 승리'가 시작된다.

'돈 주앙의 승리'는 이름에서도 눈치챌 수 있듯이,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오페라 '돈 조반니'의 주인공인 돈 조반니가 하인인 레포렐로와 옷을 갈아입으며 도주했던 이야기를 차용하여 '돈 주앙' 역시 자신의 하인인 '파사리노'와 옷을 갈아입은 채 아름다운 '아민타'를 유혹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속 '돈 주앙'의 장면이다. 카를로타의 선창으로 시작된 돈 주앙. 그리고 마지막 하이를 딱 찍으면서 접시 위 돼지 얼굴 모양에 사과를 박아버리는 요염한 카를로타까지. 완벽한 스타트였다.


The Point of No Return - 팬텀, 크리스틴

포노리라고도 줄여서 불리는 이 넘버는 주인공인 '돈 주앙'과 '아민타'가 유혹의 현장에서 부르는 노래이다. 변장을 한 채 등장한 돈 주앙 역의 피앙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천을 뒤집어쓰고 있는 모양새다. 여주인공 롤을 맡은 크리스틴은 스토리에 맞게 밀당을 즐기며 파사리노의 유혹에 응한다.

포노리 역시 여태까지 있던 멜로디와는 다른 결인데, 음이 매혹적이다.

파사리노로 나온 이 남자는 피앙지가 아니라 '팬텀' 이었다. 얼굴까지 천을 뒤집어쓰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팬텀의 표정을 볼 수 없는데, 이게 역으로 무한한 상상의 여지를 부여한다. 과연 그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사랑이라는 감정에 더 이상 천사를 연기하지 못하게 된 패배자의 좌절일까? 악마 같기도 천사 같기도 한 크리스틴에게 심장이 담보 잡힌 채 손길 하나, 하나에 덜덜 떨며 두려워하는 상황일까? 아니면 자신이 만든 음악 속에서 얼굴을 가린 채 목소리만으로 자신을 내보이며 본인의 역작에 크리스틴과 함께 듀엣을 한다는 사실에 황홀해하는 표정일까?

쓰인 대본대로 크리스틴을 유혹하다가도 역으로 크리스틴이 그에게 터치를 하는 순간 그는 손을 벌벌 떨기 시작한다. 정작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작게 다가오는 크리스틴에게 지진 난 듯 덜덜 떠는 그가 참 애달프기도, 또 무섭기도 하다. 이는 분명히 남녀 사이의 스킨십과 유혹을 표현한 곡이기 때문에, 등장인물을 떠나서 팬텀과 크리스틴이 남녀 사이의 감정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는 것 또한 의미한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느낀 크리스틴은 팬텀이 쓰고 있는 후드를 벗겨버리고, 갑자기 남자 주인공이 바뀌어버린 상황이 되어버린 현장. 팬텀은 정체가 들통나자 그 자리에서 도주하려다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라울'을 보고 결심한 듯 'All I ask of you'를 부른다. 당신과 라울이 부르던 그 사랑이 나에게는 없는가를 애타게 물어보는 팬텀에게 돌아온 것은 크리스틴의 돌발 행동이었다. 어쩌면 그녀로서는 최후의 방어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의 목소리에 또다시 자신을 잃고 넘어가기 전, 정신을 차린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최후의 발악. 그녀는 그의 역린인 마스크를 벗겨버리고, 모두의 앞에서 자신의 맨얼굴이 드러난 팬텀은 분노하며 크리스틴을 마구잡이로 끌고 다시 한번 지하 세계로 향한다.

크리스틴과 함께 도주하는 바람에 쏘지도 못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대에서 발견된 피앙지의 시체까지. 지상 역시 팬텀으로 인해 난리도 난리가 아니었다.



Down Once More... / Track Down This Murderer... - 팬텀, 크리스틴, 라울, 앙상블

지금부터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최종 장면이 이어진다.

급하게 마무리된 공연, 장막이 쳐진 사이 앙상블들과 카를로타는 피앙지 사체를 옮기고, 그렇게 앙칼지고 당당했던 카를로타는 연인의 죽음에 무너지듯 흐느끼며 그와 함께 무대를 떠난다. 그리고 함께 지나가려던 지리 부인을 또다시 붙잡는 라울. 하지만 이번엔 대답이 달랐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결국 에릭과 척지는 것을 선택한 지리 부인. 그녀는 라울에게 에릭의 은신처를 알려주겠다고 자신을 따라오라고 한다.

1막 초반 'The phantom of the opera'를 부를 때처럼 위에서 크리스틴을 끌고 내려오는 팬텀. 지금까지 자신이 세상과 부딪쳐온 좌절에 대해서 역설하던 그는 크리스틴에게 소리치듯 묻는다. 도대체 왜 자신의 가면을 벗긴 것이냐고 묻는다. 그의 '크리스틴, 왜!!!!'는 정말 처절할 정도로 슬프고 괴로운 외침이다. 반면, 3층 계단에 도착한 지리 부인과 라울. '팔을 눈높이로 올려라.'라는 지리 부인의 지시를 받은 그는 계단 밑의 호수를 향해 뛰어내린다. 그 장면 앞으로 철창이 쳐지고 다시 한번 양초 장식들이 양옆에서 밀려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저 멀리 들리는 앙상블들의 'The Phantom of the opera'가 메아리처럼 들리고..


The Point of No Return (Reprise) - 팬텀, 크리스틴, 라울

마침내 1층에 도달한 크리스틴과 팬텀. 어느새 크리스틴은 입고 있던 무대의상이 아닌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이 역시 팬텀이 미리 그녀를 위해 준비해둔 것이었으며 우리는 이미 1막에서 이 웨딩드레스를 입은 마네킹을 마주한 적 있다. 가면이 벗겨진 팬텀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얼굴을 가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크리스틴 역시, 이제 팬텀의 만행에 본격적으로 반항을 시작한다. 그런 그녀에게, 'Music of the night' 멜로디를 차용하여 어머니에게 태어나자마자 버림받고 사람들에게 저주받던 자신의 과거를 호소하며 사랑을 갈구하는 팬텀. 하지만 그것이 크리스틴을 맘대로 조종할 수 있는 명분이 될 수는 없었다. 크리스틴은 스승이라는 탈을 벗고 인간으로 마주한 그를 보며 애와 증이 같이 남아있는 상태. 자신을 외면하는 크리스틴을 보며 분노하던 팬텀은 크리스틴의 머리에 면사포를 욱여씌우고, 그런 팬텀에게 크리스틴은 분노를 누르고 진심으로 그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를 청하지만, 호수를 통해 라울이 도착하면서 팬텀의 흔들리던 눈은 다시 한번 광기로 휩싸인다. 팬텀의 요새에 도착한 라울을 보며 비명을 지르는 크리스틴. 이때 라울을 보며 비꼬는 팬텀의 멜로디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크리스틴이 부르던 음악과 같다. 순식간에 팬텀에게 목이 졸리고 있는 크리스틴을 보며 라울은 그녀를 풀어달라 부탁하지만 팬텀은 풀려난 크리스틴을 감싸 안으며 손을 내려버린 라울에게 접근해 올가미로 그의 목을 얽매는데 성공한다. 이때 라울이 크리스틴을 풀어달라 부르는 멜로디는 'Notes'에서 지리 부인이 부르던 멜로디이며, 올가미로 그를 얽매던 순간 에릭이 부르던 노래는 'Why so silent' 멜로디이다.

올가미가 매여진 라울을 보며 팬텀은 'The Phantom of the opera' 끝부분을 부르고, 그의 목숨을 손아귀에 쥐게 된 에릭은 크리스틴에게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를 제공한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으면서 크리스틴에게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팬텀. 이제 돌이킬 수 없다. 크리스틴만 궁지에 몰린 게 아니었다. 팬텀 역시, 최후의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그녀를 가져야만 했던 것이다. 강압적으로 그녀에게 '선택해!'를 외치던 팬텀의 눈동자는 목소리와 다르게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잠자코 선택을 끝낸 원작 속 크리스틴과 달리,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속 크리스틴은 선연한 분노를 드러낸다. 이때 크리스틴이 자신의 감정을 꾹꾹 담아 부르는 노래는 제목과 같이 'The point of no return'과 같은 멜로디이다. 그녀는 팬텀을 똑바로 바라보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도대체 그는 자신을 사랑하기는 하는 건지 물으며 직접적으로 그를 향한 증오를 토해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팬텀은 당황한다. 그러나 결국 키를 잡고 있는 것은 팬텀이었기에, 면사포를 내팽개친 크리스틴은 끝내 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라울은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다고 말하며, 그녀를 내버려두라고 팬텀에게 애원한다. 그녀는 자신이 팬텀을 어떤 마음으로 따랐고, 어떤 마음으로 대했는지 절실히 호소하지만 팬텀은 지속해서 선택을 강요할 뿐.

원작 속에서 에릭의 곁을 선택했던 것과 같이, 크리스틴은 조용히 팬텀에게 다가가 입맞춤을 한다. 극한으로 크리스틴을 몰아붙인 것과 다르게, 팬텀은 절대 선택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저 없이 두 번, 세 번 연달아 입맞춤을 하는 크리스틴.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이 따스한 애정과 순수한 마음에 팬텀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그리고 이때 그는 자신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가 바로 그녀를 어긋나게 사랑해서임을 진실로 깨닫는다. 이것이, 진심의 표현이고 그녀가 자신에게 보여주는 사랑이구나를 깨달은 그는, 기꺼이 그녀를 보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또다시 깨닫는다. 그녀를 사랑하기에, 그녀가 알려준 이 사랑을 되돌려주기 위해서는 자신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


Finale

마침내 팬텀은 눈물을 머금고 막 깨달은 감정에 불을 지른다. 라울을 살리기 싫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에 그녀를 보내야 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이를 악물고 그들에게 축객령을 내린다.

뒤늦게 혼자 남고 나서야 울면서 쓰러진다. 비척거리던 팬텀은 그녀가 던진 면사포를 붙잡고 흐느끼다 원숭이 뮤직박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추어 마스커레이드를 부른다. 자신의 아이덴티티와도 같았던 마스크 그리고 마스커레이드는 이제 마지막 피날레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떠난 줄 알았던 크리스틴이 눈앞에 서있는 걸 발견한 팬텀은 언제 울었다는 듯 일어서서 얼마 없는 머리를 쓰다듬고 그녀를 향해 다가간다. 팬텀에게 울음을 터트리며 크리스틴은 반지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크리스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팬텀. 이것이 그와의 마지막 만남임을 알았던 크리스틴은 그의 손을 깊게 잡았다가 놓는다. 그녀를 보내고 철창 위쪽에서 앙상블들이 내려오고 있는 상황, 마지막으로 에릭은 Music of the night를 부르고 의자에 앉아 망토를 쓰고 사라진다.

결국 오페라의 유령은 한 사람, 에릭의 비극적이고 처절하지만 결국 구원받은 인생을 그가 가진 능력인 노래와 신비한 일들로 엮어 파리 오페라 극장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국한시킨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마냥 추리소설로 보기에도 어려웠고, 마냥 로맨스 소설이라고 보기에도 어려웠던 이 작품이 앤드류 로이드 웨버라는 어마 무시한 작곡가를 만나 더더욱 힘을 받은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특히 그가 만들어낸 수많은 음악들은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작품을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