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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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예빈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7일 (금) 23:30 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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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사항

이름

박종철(朴鍾哲)[1]
박종철.png

출생 및 사망

  • 출생 : 1965년 4월 1일 부산
  • 사망 : 1987년 1월 14일

가족 관계

  • 부 : 박정기
  • 모 : 정차순
  • 형 : 박종부
  • 누나 : 박은숙

2남 1녀 중 막내

학력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중학교 부산 영남제일중학교
고등학교 부산 혜광고등학교
대학교 서울대학교(언어학과)

생애

대학 생활과 학생 운동

1학년

  • 친구의 권유로 비공개 운동 조직에 가담해 학생운동을 시작하였다.
  • 학생운동은 두 영역으로 구분되어 진행되었다.
    • 하나는 비공개 운동 조직, 다른 하나는 과 학생회
    • 비공개 운동 조직의 주요한 활동 : 선배 지도하의 독서토론(일명 세미나), 합숙 MT, 유인물 살포, 가두시위, 공활로 불렸던 공장 취업 활동 등
    • 과 학생회 활동 : 농촌 봉사 활동, 학회 활동 등
  • 1984년 1학년 시기에는 주로 학습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세미나 외에 합숙 등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 학습은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경제학 등에 집중되었다.
  • 4.19혁명 기념식 시위에 참가하고 유인물 살포, 가두시위 등도 수행하였다.
  • 여름방학 기간 : 충청북도 영동군에서 진행된 농촌 봉사 활동에 참여하였다.
  • 2학기 : 이른바 ‘서울대 프락치 사건’ 등으로 정권의 탄압이 강화되자 시험 거부 투쟁이 전개되었는데, 과 대표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2학년

  • 2학년이었던 1985년에는 서울미문화원점거사건이 발생하였고, 이를 지지하기 위한 가두 투쟁에 참여하였다가 검거되어 5일간 구류 처분을 받았다.
  • 여름방학 : 전라북도 익산군에서 진행된 농촌 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이어 대림동 세왕전기 공장에 취업해 활동하는 공장 취업 활동도 수행하였다.
  • 2학년 말에는 비공개 운동 조직이 해체되고 새롭게 개편된 ‘서울대 반제반군부파쇼 민족민주학생투쟁위원회’에 참여해 활동하였다.

3학년

  • 과 학생회장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학생회장으로서 신입생 환영회, 교련 반대 투쟁 등을 진행하였다.
  • 1986년 4월 11일 청계피복노동조합 합법성 쟁취대회 가두시위에 참석하였다.
    • 이때 체포되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받고 7월 15일 석방되었다.
    • 이로 인해 유기정학을 받아 학교생활이 곤란해졌고 향후 투쟁을 위한 준비에 집중하였는데, 이 와중에 팀 선배로 수배 생활을 하던 박종운을 만나게 되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 경찰은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 관련 수배자 박종운의 소재 파악을 위해 그 후배인 박종철을 불법으로 체포했다.
  • 경찰은 박종철에게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가했고, 결국 박종철은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 박종철의 사망해 대하여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 박종철군의 친구의 소재를 묻던 중 갑자기 책상을 탁 치자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 부속 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하였다"고 공식 발표했다.
  • 그러나 부검의(剖檢醫)의 증언과 언론 보도 등으로 의혹이 제기되자 사건발생 5일 만인 19일에 물고문 사실을 공식 시인했다. 그리고 수사경관 조한경과 강진규 등 2명을 구속했다.
  • 정부는 내무부장관 김종호와 치안본부장 강민창의 전격 해임과 고문근절 대책 수립 등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 1987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7주기 추모미사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김승훈 신부는 박종철 고문치사와 관련된 경찰의 은폐 조작을 폭로했다.
  •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 등 대공간부 3명이 이 사건을 축소 조작하였고, 고문가담 경관이 2명이 아니라 5명이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 안기부, 법무부, 내무부, 검찰, 청와대 비서실 및 이들 기관의 기관장이 참여하는 관계기관대책회의가 은폐 조작에 조직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 박종철 고문치사와 은폐 조작사건은 전두환정권의 정당성에 큰 타격을 주었고 정권 규탄 시위를 촉발했다.
  • 이 사건은 1987년 6월항쟁의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여 민주화운동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참고문헌

  • 「박종철(朴鍾哲)」(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朴鍾哲 拷問致死 事件)」(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영상한국사 I 104 경찰의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시도와 언론의 취재」(KBS 역사저널 그날)

각주

  1. 鍾 모이다 종, 哲밝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