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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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글라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6월 6일 (목) 14:36 판 (석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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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위치 :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99 (정동)
- 사적 제 124호
- 대한문, 중화전, 중명전, 석조전, 정관헌 등

정동에 위치한 조선과 대한 제국의 궁궐이다. 조선 초기에는 월산대군의 사가였는데 임진왜란 후 선조가 임시거처로 사용하면서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다가 광해군 때 정식 궁궐로 승격돼 경운궁으로 개칭되었다.
을미사변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구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후 1897년 2월에 경운궁으로 환궁하면서부터 역사에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대한제국이라는 황제국을 선포한 뒤에 황궁으로서의 규모와 격식을 갖추게 되었지만 1904년 대화재로 중심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다. 1907년에는 고종이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되고 이때부터 경운궁은 고종의 궁호인 '덕수'를 따 덕수궁으로 불리게 되었다.

연혁

XXXX년 X월 X일 증축 XXXX년 X월 X일 용도 변경…

특징

건물 배치는 크게 정전(중화전)과 침전(함녕전)이 있는 부분 / 선원전이 있는 부분 / 서양식 건물인 중명전이 있는 부분으로 나뉜다.
궁의 배치는 1904년 화재 뒤로 변화되었고 서양식 건물들이 지어지면서 기존의 건물과 조화를 잃게 되었다. 특히 나중에 지어진 석조전 등은 기존 정전 건물들과 축이 일치되지 않고 그 위치도 정전과 인접하게 대규모로 지어지면서 종래의 궁궐의 공간적 규범을 깨뜨리고 말았다.
19세기 이후 들어선 궁내 서양식 가운데 돈덕전과 석조전이 가장 큰 규모의 건물이었다.

건축물

중명전

정관헌

정관헌은 고종이 다과를 들고 음악을 감상하던 곳으로, 태조· 고종 · 순종의 영정을 봉안하기도 하였다. 조적식 벽체에 석조기둥을 세우고 건물 밖으로 목조의 가는 기둥을 둘러 짜여진 건물이다.
- 러시아인 사바틴이 설계했다는 설이 있음
- 외벽 : 붉은 벽돌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기둥으로 구성
- 지붕 : 전통 건축의 팔작지붕
- 큰 홀 중심으로 전면과 좌우에 베란다 설치, 후면에는 부속실이 배치되어 있는 단순한 구성

  • 서양식 테라스

소나무, 박쥐, 사슴 등 전통적인 문양이 투각된 금속 난간

  • 기둥과 낙양

- 코린트식 주두와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오얏꽃 문양 기둥 상단에 여러 종류의 꽃이 있는 청자 화병 양각
- 꽃, 박쥐, 사슴, 소나무 등 전통문양을 투각하고 단청 채색한 낙양

석조전

  • 개요

석조전은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서양식 건물이다. 고종에 의해 황제국이 선포된 후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으로 만들어졌으며, 동양의 전통 궁궐과 달리 서양 주거 양식을 도입하여 내부에 접견실, 대식당, 침실, 서재 등을 갖추었다.

- 영국인 하딩이 설계를 맡아 1900년부터 10년에 걸쳐 공사 진행
- 정면 54m, 너비 31m
- 외견상 3층 석조건물(지하 1층, 지상 2층)
- 그리스 신전 건축에 기초한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
→ 엄격한 비례와 균형, 대칭의 질서와 조화 추구

석조전 남쪽에 일본인들이 미술관을 세우고 그 앞에 서양식 연못을 만들면서 궁의 본래 모습이 상당히 파괴되었다.

  • 양식

르네상스의 러스티케이션을 연상시키는 기단 위에 중앙 페디먼트를 중심으로 좌우에 대칭적으로 기둥을 줄지어 세운 것은 전형적인 신고전주의 건축의 특징이다.

    • 현관
    • 이오니아식 주두

- 전면 중앙부 돌출, 페디먼트에는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오얏꽃 무늬
- 정면 현관부에는 둥근 기둥을 사용했고 좌우 회랑 부분에는 사각 기둥을 사용해 변화를 줌

돈덕전

참고문헌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