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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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연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12월 10일 (일) 16:05 판 (19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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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소개

남정 박노수(藍丁 朴魯壽)
박노수인물사진.jpg
1927년 2월 17일~2013년 2월 25일

"아무리 유능한 기교를 가진 사람도 자연을 그대로 화면에 옮길 수 없다. 조물주가 자연을 창조했듯이 화가도 화면에 제 2의 자연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다"

작품세계

1970년대

1970년대 이후의 박노수 회화는 변천하였다. 담채로 한국 산천을 보이는 대로 그린 수묵 사경산수화와 사뭇 달랐다. 평소 자연을 사랑하여 산수화를 많이 그린 박노수는 당시 화단에서 대세로 군림한 양식과 형식을 따르지 않았다. 이전과 달리 물감의 무거운 두께를 내려놓았고, 채색을 바르지 않은 날 것의 바탕을 남겨두었다. 산등성이를 삼각형의 도형으로 간략하게 변형하거나 미점으로 부드럽게 펼치면서 화사한 원색을 발라 바탕색과 대비시켰다. 간결한 선묘와 더불어 명도와 채도가 높은 색상을 선염하거나 강한 농묵을 편편하게 발라 색면 추상이나 다름없는 화면을 연출하였다. 먹과 색을 혼용하고 여백을 활용한 1960년대의 산수 인물화가 1970년대 이후 평면처리된 소폭의 산수풍경화로 변화한 것이다.
그 결과 박노수의 1970년대 회화는 간결하고, 산뜻하며, 선명하다. 박노수는 1970년부터 먹이 섞인 짙은 남색을 자주 사용하다가 점차 먹색을 덜어내었고, 1972년 여름부터 독특한 군청을 고안하였는데 이 시기의 군청은 프러시안블루(Prussian blue)에 가깝다. 이후 박노수의 군청은 점차 명도와 채도가 높아지는데 프러시안블루에서 코발트블루(Cobalt blue)로 변화한 것이다. 이는 80년대까지 지속되며 박노수의 상징과 같은 '쪽빛색'을 발현하게 된다. 해방 이전부터 갈등을 빛어 온 수묵과 채색의 지속되는 대립 속에서 '채색=왜색'이라는 인식을 깰 수 있도록 색이 부여하는 무한한 창작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1980년대

박노수작품에서의 다양한 변화적 요소의 흐름은 전기 인물화를 거쳐 필선으로 표현한 산수와 문인화로 이어서 채색에 대한 연구로 다양하게 모색되었다. 이에 말미암아 1980년대에는 그의 대표 색상인 눈이 시리도록 선명한 군청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류하>에서 이러한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선명하고 강렬한 푸른 군청색의 버드나무가 공간의 반 이상 넓게 채색되어있다. 화면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나무 두 그루가 서 있고 이 사이에 소년이 배치된 수하인물도 형식의 산수풍경화다. 그의 대표색으로 자리매김한 군청색의 선명함은 단지 색만으로 획득되지 않는다. 오히려 여백과의 대조를 통해 작품은 한층 더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류하.jpg[1] 1980년대 중반부터는 강렬한 원색과 더불어 중간색을 연하게 선염하여 한층 부드러운 분위기를 화폭에 부여하였다. 당시 작품들의 전반적인 화면 구도를 보면 인물의 소재나 시선을 대각선으로 배치하여 구성하는 방법과 수직, 수평 구도로 화폭에서 어느 정도 긴장감과 안정감을 동시에 구사하는 방법을 취하였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징 속에서 산수 속 인물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관조하는 모습이 더욱 두드러지며 관람자로 하여금 직접 관망하는 감각적인 경험을 부여한다.

80년대 박노수의 한국화에는 그가 평생 추구한 모든 것이 녹아있다. 지필묵을 접한 순간부터 체득한 문인화 전통과 산수화 기법, 그리고 한국적 채색에 대한 열정이 응집되어 있다.

  1. 엄길수, 남정 박노수 '화필인생' 꿰뚫다, 바로뉴스, http://www.baronews-k.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