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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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race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12월 9일 (토) 01:1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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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호
    •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또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 전 1, 2, 3호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금한다.
    •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는 15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
    • 이 조치는 1974년 1월 8일 17시부터 시행한다.
  • 제7호
    • 1975년 4월 8일 17시를 기하여 고려대학교에 대하여 휴교를 명한다.
    • 동교내에서 일체의 집회, 시위를 금한다.
    • 위 제 1, 2호를 위반한 자는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 10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 국방부장관은 필요하다고 인정한 때에 병력을 사용하여 동교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 이 조치에 위반한 자는 법관의 영장없이 체포·구금·압수·수색할 수 있다.
    • 이 조치에 위반한 자는 일반법원에서 관할심판한다.
    • 이 조치는 1975년 4월 8일 17시부터 시행한다.

긴급조치에 의해 묻혔던 사건들

대통령 긴급조치가 발효됐던 기간 동안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시위사건의 참여자 1천여명이 구속되었으나 신문, 방송, 언론은 긴급조치 9호에 저촉됐기 때문에 이러한 사건의 발생 사실은 물론 처벌 내용조차 당국의 발표 이외에는 보도할 수 없었다. 긴급조치 9호의 완전해제에 따라 74년 1월 8일 긴급조치 1호 발표 이후 10.26사태가 있기까지의 사건들을 1979년 12월 8일자 경향신문[1]에서 정리하여 보도하기도 하였다. 특히 1975년 4월 6일~7일 사이에 있었던 교내 반유신농성집회로 인해 고려대학교를 대상으로 긴급조치가 발효된 적이 있다.[2] 8호와 함께 긴급조치 중에서 유일하게 전국이 아닌 한 대학교를 대상으로 발효되었다는 데 특이점이 있으며, 당시에는 고려대학교를 폐교 처분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하였다.

표 74년 1월8일 대통령령긴급조치제1호, 제2호선포. 이날17시부터 시행. 1월 15일, 긴급조치 1호 위반자에 대한 비상보통군법회의: 장준하, 백기완에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 1월20일 서울지검, 한선물산대표 한기열씨(58)를 긴급조치3호의 첫 위반자로 구속. 4월 3일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민중 민족 민주선언' 발표, 전국 시위 계획 4월 3일 밤부터 대대적으로 학생들 검거. 5일까지 200여명 검거, 총 1,024명 수사. 윤보선, 박형규, 김동길, 김찬국 등 기소, 180명 군사재판에 회부, 이철, 김지하 등 사형선고.

75년 5월 13일 긴급조치9호선포 76년 3월 1일 서울명동성당 3.1절 기념미사때 윤보선, 정일형, 김대중, 함세웅 등이 "민주구국선언을 발표, 11명이 긴급조치위반혐의로 구속되고 7명이 불구속 입건.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