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근대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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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요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12월 8일 (금) 02:5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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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조선 말기(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사이에 지어진 건축문화재들 중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현존하는 건축물들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조선 후기(개화기)

기기국 번사창

기기국 번사창.jpg
  • 서울특별시 시도유형문화재(1984년 12월 17일 지정)
  • 시대: 고종 21년(1884)
  •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118
  • 소유주: 한국은행
번사창(飜沙廠)은 1884년(고종 21)에 건축된 기기국(機器局)의 무기고로 건평 198㎡쯤 되는 이 집은 장대석과 사괴석(四塊石)으로 된 토대 위에 세워졌으며, 겉은 회색 벽돌로 벽체를 쌓았고, 붉은 벽돌로 견치형(犬齒形)의 띠를 두른 위에 왕대공 지붕틀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놓여져서 맞배지붕을 이루고 있다.
출입문에는 아치를 틀었고 특히 정문은 화강석으로 꾸며졌으며, 측면문은 붉은 벽돌로 띠를 넣어 장식하고 있어서 매우 특이한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다.
일찍이 이곳 삼청동에는 군기시(軍器寺) 소속이던 화약도감(火藥都監)이 있었고, 이에 딸린 화약고 별창(別倉)이 있었다. 따라서, 별창자리에 번사창이 들어서면서 무기고를 겸한 화약제조소가 되었다.
이 집은 일제강점기에 세균실험실이 되었고 광복 후 미군정 때는 중앙방역연구소, 정부수립 후 국립사회복지연구원으로도 쓰이다가 1970년 한국은행 소유로 되었다.[1]

대한제국 시대

서울 대한의원

서울대한의원전경1(촬영년도2015년).JPG
  • 사적(1976년 11월 16일 지정)
  • 시대: 융희 2년=순종 2년(1908)
  • 소재지: 서울 종로구 연건동 28-21번지 (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
  • 소유주: 서울대학교 병원
서울 대한의원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에 있는 대한제국시대의 대한의원 건물이다.
1907년 대한제국 정부가 임금의 명령에 의해 의정부 직속으로 창경궁의 바깥 정원인 함춘원의 언덕에 지었다. 일본인 기술자의 설계로 1907년 건물을 짓기 시작하여 1908년에 완성하였다. 처음에는 병동과 부검실, 의학교가 지어졌으나 현재는 본관건물만 남아 있다.
1910년 대한의원은 조선총독부의원으로 바뀌었고, 1911년에는 부속 의학강습소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926년에는 경성제국 대학에 포함되면서 대학병원으로 되었다. 광복 뒤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병원의 본관이 되었고, 1970년대말 새 건물이 세워진 뒤에 부속건물이 되었고, 현재는 서울대학교병원 부설 병원연구소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의 구조는 지상 2층으로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형으로 되어 있으며, 자동차로 직접 현관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현관에 차 대는 곳을 만들어 정면 입구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본관의 지붕은 앞면에서 봤을 때 사다리꼴 모양을 한 우진각 지붕이며, 중앙에 높이 솟은 시계탑은 바로크양식을 하고 있어 본격적인 서양식 건축물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 [2]

구 공업전습소 본관

구공업전습소본관.JPG

  • 사적(1981년 09월 25일 지정)
  • 시대: 융희 2년=순종 2년(1908)
  • 소재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169-1번지 (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내)
  • 소유주: 교육부
대한제국 순종 융희 2년(1908)에 건립된 이 건물은 건편 997㎡의 2층 목조(木造)로서 당시의 탁지부(度支部) 건축소에서 설계했다. 당시의 목조건물로는 유일하게 남은 것으로 벽은 독일식 비늘판이며, 외형은 르네상스 양식을 모방했다.
이 건물은 본래 전환국시대로부터 기계시험소(機械試驗所)가 있던 터에다 1906년 공업전습소가 발족됨에 따라 그 본관으로 지은 것이다. 후일 국립공업시험원 본관이 되었고, 다시 통신대학에서 사용하여 오늘에 이른다.
설계는 구 한국정부의 탁지부(度支部)건축소에서 전담하였고, 시공은 일본인 요시다겐조오(吉田謙造)가 밑아 하였다.
평면은 H 자형으로 중앙부에 현관을 두었으며 외벽은 나무비늘판이음이고, 지붕은 기와이음이다. 특히 중앙 현관부 상부에는 탑을 두고, 탑위에 반원구의 돔을 얹었으며 좌우 양측 돌출부 1층과 2층 상부에는 파라디오(Palladio)가 즐겨쓴 디오크레티안윈도우(Dioclentian window)를 설치하여 전체적으로 르네상스시대의 빠랏조풍(Palazzo 風)을 이루고 있다.[3]

일제강점기(1910년대)

서울 배화학원 캐롤라이나관

가회동 백인제 가옥

일제강점기(1920년대)

서울 중앙고등학교 서관, 동관

천도교 중앙대교당

일제강점기(1930년대)

서울 중앙고등학교 본관

중앙고등학교본관.jpg

  • 사적(1981년 09월 25일 지정)
  • 시대: 1937
  • 소재지: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164 (계동)
  • 소유주: 고려중앙학원
중앙고등학교는 민족선각자들이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여 나라를 구하겠다는 구국정신으로 설립한 학교다. 1908년 기호지방의 우국지사들이 설립한 기호학교(畿湖學校)가 1910년 흥사단에서 설립한 융희학교(隆熙學校)와 합병되면서 새롭게 탄생된 학교다. 1917년 제1회 졸업생인 김성수가 중학과정을 가르치던 이 학교를 인수한 후 백두산을 상징하는 백산학교로 이름을 바꾸려고 하였으나 일본의 방해로 결국 중앙고등보통학교라 이름짓고(1951년 3년제 중앙고등학교로 개편) 건물을 새로 지었는데, 가운데 본관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관과 서관을 2층 벽돌조로 지었다. 본 건물은 1917년에 지은 구 본관이 1934년 화재로 소실된 후 한국인 건축가 박동진이 설계한 것으로 1937년 9월에 완공되었다.
이 건물은 고딕식 학교건물로, 당시 유럽과 미국의 학교 건축의 영향을 받았다. 가운데 튜더 아치문의 주현관홀을 통과하면 뒷 정원이 나오는데 좌우로 적벽돌의 동관과 서관, 그리고 맞은편의 석조 신관이 둘러싸고 있다. 4층의 중앙탑은 앞뒤 모서리에 8각 소탑(turret)이 붙어있고, 1층은 튜더 아치, 2, 3층은 퇴창(또는 돌출창, bay window), 4층은 사각창, 그리고 꼭대기는 흉벽난간을 둘렀다. 좌우 익부의 측면 박공면이 정면과 후면을 향해 있어 본관의 정면뿐만 아니라 배면도 아름다운 파사드를 형성하고 있다. 창 둘레는 화강석 잔다듬으로 정교하게 마감하고, 벽면은 거친 다듬의 바른층 쌓기, 그리고 튜렛을 비롯하여 부분 부분에는 혹두기의 거친 다듬을 사용해 중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근대 초기양식으로 민간인이 세운 학교의 기념비적 건물이며, 또한 우리나라 건축가에 의하여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의의 있는 건물이다.[4]

서울 홍파동 홍난파 가옥

박노수가옥(박노수미술관)

참고문헌

각주

  1. 김영상, "번사창 (飜沙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2514
  2. 문화재청, "서울 대한의원 (서울 大韓醫院)",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2_0&ccbaCpno=1331102480000
  3. 문화재청, "구 공업전습소 본관 (舊 工業傳習所 本館)",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2_0&ccbaCpno=1331102790000
  4. 김정신,"서울중앙고등학교 본관 (서울中央高等學校 本館) - 한민족문화대백과",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3827